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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기 없는 세상이 온다면(생명공학과 졸업생 양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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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09 15:54:19

‘통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주삿바늘이 떠오른다. 표피를 뚫고 찔러넣은 가느다란 쇠침을 통해 약물이 주입되고, 그 짧은 고통의 대가로 더 큰 고통을 상쇄하는 이 의학적 행위가 지극히 합리적이면서도 끔찍하게 느껴진다. 꼭 일주일 전 몸살감기에 시달려 주사 한 대를 맞았다. 뾰족한 쇠가 드나든 팔뚝 바깥쪽에 티끌만 한 자상(刺傷)이 남았다. 동그랗게 파인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 몇 날이고 들여다봤다.

 

주삿바늘이 트라우마로 남은 건 몇 해 전이었다. 암 투병 중인 어머니를 간병하며 출근 전과 퇴근 후 시간 대부분을 대학병원 병실에서 보낼 때였다. 아침 회진이 끝나면 간호사가 링거 주사기를 새것으로 교체해줬다. 병세가 악화되며 의사소통이 점차 어려워지는 와중에도 주삿바늘이 들어갈 때면 어머니는 그 원초적 고통에 늘 몸을 움찔했다. 장기가 망가지고 몸이 부으면서 혈관 찾기는 점차 어려워졌고, 종국엔 주삿바늘을 몸에 심어야 했다. “더는 가망이 없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이 내겐 “더 이상 주사기 꽂을 곳이 없다”는 소리로 들렸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막 내린 ‘세계 백신 회의(World Vaccine Congress) 2022′에 ‘마이크로 니들(Needle·바늘) 패치’란 기술이 소개됐다. 약국에서 파는 여드름 패치처럼 각종 백신을 주사기 없이 붙이기만 하면 되는 기술이다. 현미경으로 봐야 식별되는 머리카락 3분의 1 수준 굵기의 뾰족한 미세 바늘이 피부에 달라붙는 순간 표피 안쪽으로 약물이 침투한다. ‘주사기 없는 주사’였다. 화이자·모더나 같은 굴지의 대기업 기술인 줄 알았는데 연세대 학내 벤처로 출발한 직원 10명 남짓 ‘주빅’이란 작은 회사가 발제자였다.

 

이 기술을 연구 중인 양휘석(34)씨는 “대학원 시절 의료 봉사를 할 때 만난 주사 자국 가득한 아이들의 팔뚝이 이 연구를 시작한 계기가 됐다”고 했다. “어린이날이면 병원에서 아픈 아이들과 종일 놀아주곤 했어요. 여느 또래처럼 해맑은 아이들이 유독 주사 자국 보이는 걸 꺼려했어요. ‘엄마 아빠가 팔에 남은 주사 자국 보면 속상해한다’면서 저한테도 보여주기 싫다고요. 지금 앓는 병 하나로도 감당하기 벅찰 만큼 아플 텐데, 주삿바늘 넣는 정도의 고통은 내가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붙이는 주사제 기술은 국내외 여러 기업에서 연구 개발을 진행 중이지만, 주입할 약물을 고형화하는 기술적 어려움이 많아 아직 의약품으로 정식 허가받은 사례는 없다. 고무적인 것은 재작년 8월 주빅과 연세대의 공동 연구에서 패치형 독감 백신을 쥐에게 실험한 결과, 액상 백신보다 적은 용량으로 더 높은 면역 효과가 입증됐다는 것. 기존 주사제가 온도에 민감한 데 반해 패치는 상온 유통이 가능해 제3세계 같은 백신 사각지대에도 보급이 용이해질 수 있다고 한다. 머잖은 미래에 정말 주사기 상당수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오른 팔뚝에 남은 일주일 전 감기몸살 주사의 흔적을 본다. 상흔이 거의 옅어졌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있는 ‘가정의 달’. 한 가지 소원을 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 누구도 아프지 않는 것이다.

 

 

출처 : 동아일보, ​https://www.chosun.com/opinion/cafe_2040/2022/05/06/ED7WKLH2I5GJ7MNYHZIXH46X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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