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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32)] 2차 대전 공훈 기려…미 일리노이주 공식 미생물 지정된 ‘푸른곰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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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13 10:48:10

(32) 페니실린과 지역 상징물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영국 의사 플레밍이 처음 발견한 후

확실한 정제 위해 푸른곰팡이 분양

체인·플로리·히틀리, 힘 합쳐 연구

1년 반 만에 어렵게 0.1g 손에 넣어

실험 통해 효능은 입증해냈지만

턱없이 부족했던 ‘양’이 걸림돌​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대로 무궁화는 대한민국 나라꽃(국화)이다.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꽃은 물론이고 새와 나무 등도 그 지역을 알리는 동식물로 지정하고 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심지어 미생물까지도 공식 상징물로 삼는 곳이 있다. 예컨대, 2021년 8월 미국 일리노이주 정부는 페니실린을 만드는 푸른곰팡이 하나를 ‘주 공식 미생물(Official State Microbe of Illinois)’로 선포했다. 정작 페니실린을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영국 의사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인데, 어찌하여 푸른곰팡이가 영국이 아닌 미국에서 이런 영광을 안게 되었을까?

 

발견과 정제

 

페니실린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건 첫 발견 이듬해인 1929년이다. 이후 플레밍은 이 항생제를 순수하게 분리해내려고 10여년 동안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공하지는 못했다. 이 기간에 플레밍은 원하는 모든 연구자에게 푸른곰팡이를 기꺼이 분양해주었다. 누구라도 페니실린을 정제해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에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옥스퍼드대학교의 생화학자 한 사람이 플레밍이 1929년 발표한 논문을 읽고 큰 관심을 가졌다. 나치를 피해 1933년 영국으로 건너온 유대인 과학자 언스트 체인(Ernst Chain)이었다(‘페니실린과 슈퍼박테리아’, 경향신문 2021년 2월19일자 14면 참조).

 

체인은 애초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일하다 1935년 옥스퍼드대학교 병리학 주임교수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와 연이 닿았다. 새 직장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검토하던 체인은 페니실린 연구가 1929년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플로리에게 이에 관한 연구를 제안했다. 플로리는 곰팡이 배양을 전담할 전문가 노먼 히틀리(Norman Heatley)를 합류시켜 연구진을 꾸렸다. 연구 과정은 험난했다. 소량 분비되는 페니실린을 얻기 위해 푸른곰팡이를 엄청나게 많이 키워야 했고, 불안정한 페니실린을 분리해내는 실험 자체만큼이나 인간관계도 힘들었다. 둘 다 자기주장과 개성이 강했던 탓에 플로리와 체인은 수시로 부딪쳤다. 어쨌든 페니실린 정제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부대끼며 나아갔고, 1년 반 만에 어렵사리 페니실린 0.1g을 손에 넣었다.

 

1939년 5월, 연구진은 실험용 쥐 여덟 마리에 병원성 연쇄상구균을 감염시키고, 그중 네 마리에는 페니실린을 주사했다. 히틀리는 밤새 실험실을 지켰다. 새벽 4시쯤, 쥐들의 생사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페니실린을 맞은 쥐는 모두 멀쩡했지만, 그렇지 않은 쥐는 몰살되었다. 다음날 결과를 토론하는 자리에서 체인은 기쁨에 겨워 춤을 추다시피 했다. 반면 플로리는 평소처럼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친한 동료에게 전화할 때 플로리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이후 연구진은 반복 및 보강 실험을 마치고, 1940년 8월에 기적과도 같은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첫 임상시험의 명암


1941년 2차 세계대전 소용돌이 속

플로리와 히틀리만 미국행 결단

화이자 등 제약회사도 연구 참여

원조보다 6배 많은 생산능력 가진

‘캔털루프 추출 푸른곰팡이’ 찾아

이 ‘신예 균’이 약 상용화 불붙여

 

1941년 2월, 사상 처음으로 페니실린이 사람에게 투여되었다. 장미를 가지치기하다가 입 주위가 가시에 쓸린 40대 경찰관이었는데, 상처가 덧나 얼굴 전체에 염증이 생기고 폐까지 감염되어 위독한 상태였다. 플로리는 이 환자에게 정제된 페니실린을 주사했고, 사흘 만에 놀라운 회복세를 보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준비된 페니실린이 모두 소진되어 그는 끝내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하지만 페니실린의 효과는 임상에서 입증되었다.

 

이윽고 연구진은 페니실린 대량 생산 기술 개발에 나섰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영국에서 안정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건 불가능했다. 플로리의 선택은 미국이었다. 드디어 1941년 6월, 플로리는 히틀리만 동행한 채로 미국으로 향했다. 격분한 체인은 플로리를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이후 여러 차례 공언했고, 둘 사이에 노골화된 반감은 언론에 좋은 기삿거리가 되었다.

 

기념비적인 여정을 떠나기 전, 히틀리는 보물 푸른곰팡이를 안전하게 가지고 가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별도로 용기에 담아가면 분실이나 도난 위험이 있으니, 코트에 곰팡이를 묻혀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히틀리와 플로리는 그렇게 미국으로 푸른곰팡이를 무사히 가져갔고, 이런 노력에 보답하듯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드디어 미국 일리노이주 도시 피오리아에 있는 농무부 산하 연구소에 페니실린 연구 컨소시엄이 구성된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곰팡이를 배양하려는데, 히틀리가 영국에서 사용하던 배지 제조에 필요한 성분 하나를 당장 구할 수가 없었다. 배지란 미생물을 키우기 위해 사용하는 영양물질을 말한다. 고민에 빠진 그에게 한 연구원이 미국 중서부에 지천으로 있는 ‘옥수수 침지액’을 대신 사용해보자고 제안했다. 옥수수 녹말 생산 과정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이 액체는 쉽게 말해 옥수숫가루를 불린 물이라고 보면 된다. 궁여지책이 기막힌 묘수가 되었다. 침지액에는 포도당과 아미노산, 비타민 따위가 풍부해 곰팡이 성장과 페니실린 생산량이 많이 증가했다. 히틀리는 반년 동안 피오리아에 머물며 푸른곰팡이 대량 배양법을 연구했고, 플로리는 미국 정부와 더 많은 제약회사의 지원과 관심을 구하기 위해 동부로 갔다.

 

태평양전쟁과 페니실린 양산


80년 후 미국 일리노이주 정부는

‘페니실륨 루벤스’를 상징물로 선포

인류를 구한 ‘위대한 발견’ 기려

 

플로리와 히틀리가 페니실린 양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무렵, 제2차 세계대전 전세에 큰 변화가 생겼다. 서부 유럽 대부분을 장악한 독일은 독소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1941년 6월22일 소련 침공을 개시했다. 한편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이 장기화하자 자원 확보를 위해 동남아시아를 침략했다. 이때 미국이 석유를 비롯한 전쟁물자의 일본 수출을 금지하면서 이를 제지하고 나섰다. 그러자 1941년 12월7일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전쟁이 발발했다. 이로써 전쟁은 미국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소련이 중심을 이룬 연합국과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이 뭉친 ‘추축국(Axis Powers)’의 대결 구도로 바뀌며 전선이 전 세계로 확대되었다. 추축국이란 1936년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가 “유럽의 국제 관계는 로마와 베를린을 연결하는 선을 추축으로 하여 변화할 것이다”라고 연설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미국의 참전은 전쟁 향배뿐만 아니라 페니실린 양산 과정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수많은 미국 젊은이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미국 정부와 제약회사 모두에게 이제 페니실린은 과학적 선택 사항이 아니라 의학적 필수품이 되었다. 진주만 공격 열흘 후, 머크(Merck)와 화이자(Pfizer)를 비롯한 굴지의 제약회사가 참여해 페니실린 상용화에 박차를 가했다. 1942년, 전쟁은 더욱 격화되었고, 피오리아 연구소 연구진은 기존 연구에 더해 페니실린 생산 능력이 더 뛰어난 푸른곰팡이 물색에 나섰다. 심지어 매일 시장을 돌며 곰팡이가 필 정도로 후숙된 과일 구매를 전담하는 연구원을 둘 정도로 백방으로 뛰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귀균(貴菌)’을 만났다. 껍데기가 물커진 캔털루프에서 분리한 푸른곰팡이가 플레밍의 보물보다 여섯 배나 많은 페니실린을 만들어냈다. 결국 대량 생산에는 원조가 아닌 신예가 투입되었고, 80년 후 일리노이주 공식 미생물이 되었다. 공식 이름, 곧 학명은 ‘페니실륨 루벤스(Penicillium rubens)’이다.

 

일리노이가 공식 미생물을 선포한 첫 번째 주는 아니다. 오리건주는 지역 경제에서 ‘크래프트 비어(craft beer)’ 산업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고려하여 2013년부터 맥주효모, ‘사카로미세스 세레비시에(Saccharomyces cerevisiae)’를 선택했다. 흔히 수제맥주로도 불리는 크래프트 비어는 개인이나 소규모 양조업체가 저마다 고유한 방식으로 만드는 맥주를 일컫는다. 맥주효모 학명은 각각 당(Saccharo)과 곰팡이(myces), 맥주(cerevisiae)를 뜻하는 라틴어를 조합한 것이다. 하지만 이 효모는 빵 발효도 수행하니까 ‘빵효모’라 불러도 무방하다(‘마이크로 가축’, 경향신문 2021년 1월15일자 14면 참조).

 

대한민국을 빼놓고 발효 식품을 논할 수 없다. 각종 김치와 장류를 비롯한 발효 음식이 빠진 우리 밥상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니 말이다. 더욱이 이런 전통 음식은 지역마다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겉모양보다 내실이 훨씬 훌륭함을 이르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장맛은 메주에 달려 있다. 메주는 간장과 된장, 고추장을 만드는 주원료이다. 전통 방식에 따르면, 그해에 나온 해콩으로 초겨울에 만든다. 먼저 가마솥에 콩을 넣고 푹 삶는다. 잘 무른 콩을 절구에 넣고, 절굿공이로 찧는다. 으깨진 콩을 틀에 넣거나 손으로 빚은 다음에 초벌로 말린다. 마지막으로 꾸덕꾸덕해진 메줏덩이를 볏짚 위에 두거나 꼰 볏짚으로 매달아 겨우내 둔다.

 

잘 띄워진 메주에는 누룩곰팡이와 고초균, 젖산균(유산균)을 비롯해 대략 800여종의 미생물이 살고 있는데, 그 조성은 지역별로 다르다. 발효의 양상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미생물이다. 따라서 지역마다 다른 토종 메주 미생물이 있다는 사실은, 그 고장 장맛이 미생물에 달려 있음을 깨우쳐준다. 이들 발효 일꾼은 온도와 습도 같은 환경 요인에 따라 다른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특급 토산 메주는 미생물에 그 지역의 날씨와 고유한 메주 띄우기 방식이 더해져 완성되는 셈이다. 미생물학적으로 보면 메주는 맛있는 건강식품을 만드는 다양한 미생물의 보고이다. 문득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한국의 맛을 내는 수많은 ‘미생물 요리사’를 발굴하여 그 지역 공식 미생물 또는 홍보대사로 임명하면 어떨까!​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2차 대전 공훈 기려…미 일리노이주 공식 미생물 지정된 ‘푸른곰팡이’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또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연재 중이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출처 :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2206092056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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