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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34)] 미세조류와 곰팡이의 ‘공생’…녹조라테도 ‘연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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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8-05 16:19:01

(34) 녹조라테가 에너지가 된다면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우리 속담에 이르기를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굼벵이란 매미와 풍뎅이 같은 곤충의 애벌레를 일컫는 말이다. 성충으로 탈바꿈하기 전까지 주로 흙 속에 사는 이 유충은 몸통은 굵고 다리는 짧아 움직임이 굼뜨다. 그러나 위협을 감지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땅을 파고 들어간다. 굼벵이의 숨은 재주는 구르기가 아니라 땅파기다. 아무튼 굼벵이에 빗대어 아무리 무능해 보여도 누구나 저마다 재능을 적어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음을 해학적으로 알려주는 옛사람의 지혜가 감탄스럽다. 

이에 못지않게 감탄스러운 또 다른 사실은 흔히들 하찮고 귀찮게 여기는 미생물 세상에는 훨씬 더 놀라운 재주를 지닌 능력자가 즐비하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일부는 인류가 당면한 난제를 해결하는 데 핵심적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그 비중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예컨대 에너지 위기 극복을 위한 친환경 대체에너지 개발에 미생물 재주 부리기가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차세대 생물연료 추출원 미세조류
자연수·햇빛이면 거의 매일 수확
기름 함량 높아 바이오디젤로 가공

생물연료와 조류 

지난 세기 동안 급증한 화석연료 사용이 21세기 글로벌 환경 문제를 일으킨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따라서 친환경 에너지 개발 없이는 미래 인류의 번영은 물론이고 생존 자체를 낙관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실정에서 ‘바이오매스(biomass)’를 원료로 해서 만드는 ‘생물연료(biofuel)’가 유망한 친환경 대체에너지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생명(bio)’과 ‘덩어리(mass)’를 합친 바이오매스는 일정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통틀어 이르는 용어이다. 최근에는 톱밥과 볏짚부터 음식물 쓰레기나 축산 분뇨에 이르기까지 인간 활동에서 발생하는 유기성 폐기물도 바이오매스로 간주한다. 바이오매스는 그대로 땔감으로 써도 되지만, 미생물을 이용하여 훨씬 더 유용한 연료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녹말과 섬유소 같은 식물 유래 바이오매스를 발효하여 만드는 바이오에탄올은 이미 가솔린 보조제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한편 조류는 매력적인 차세대 생물연료 추출원이다. 뿌리, 줄기, 잎의 뚜렷한 구분이 없는 광합성 생물을 아우르는 조류는 크게 대형조류와 미세조류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미역과 파래, 김처럼 밥상에서, 후자는 적조 또는 녹조 발생 뉴스로 일상에서 접하곤 하는데, 생물연료 생산용으로는 미세조류가 훨씬 더 관심을 끈다. 

무엇보다도 조류 재배에는 넓고 비옥한 땅이 필요 없다. 자연수에 그저 풍부한 햇빛만 있으면 된다. 이뿐만 아니라 조류는 거의 매일 수확할 수 있다. 시험 운행 중인 일부 조류 생산 시설에서는 심지어 근처 발전소에서 대기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를 공급하여 광합성을 촉진함으로써 조류를 더 빠르게 자라게 한다. 생물연료 원재료 생산과 함께 주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일거양득 효과를 톡톡히 보는 셈이다. 

같은 면적에서 조류는 옥수수보다 약 40배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해낸다. 조류는 무게의 20% 이상을 기름으로 내놓을 정도로 기름 함량이 높기 때문이다. 짜낸 기름은 바이오디젤로 가공된다. 남은 찌꺼기도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풍부해서 바이오에탄올 생산에 다시 이용할 수 있고, 동물 사료로 쓸 수도 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미세조류는 이미 1970년대부터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유망한 에너지원으로 많은 연구자의 눈도장을 받았다. 그러나 반세기에 걸친 연구 노력에도 미세조류는 호락호락 넘어오질 않고 있다. 

실용화 위한 기대주 ‘생물응집’
효율 높고 운용비용 크게 절감
미세조류·곰팡이 결합으로 성과

장벽을 넘어 

미세조류 기반 연료 생산의 실용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총생산비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수확 비용이다. 드넓은 물에 퍼져 있는 작디작은(보통 2~20μm) 미세조류를 거두어들이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가라앉히든지 걸러내든지 둘 중 하나다. 살아 있는 미세조류 표면은 음성을 띠므로 금속염 같은 양성 화합물을 응집제로 투여하거나, 원심분리기를 이용하여 침전시킬 수 있다. 아니면 대용량 필터를 이용한 여과도 가능한 선택지다. 하지만 무엇을 고르든 엄청난 양의 물에서 미세조류를 분리해내려면 엄청난 에너지를 써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커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생물응집’이 장벽을 넘어설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말하자면 인공화합물 대신에 미생물 유래 물질 또는 미생물 자체를 미세조류에 붙여 함께 가라앉히는 방법이다. 효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산업 폐기물 따위를 이용하여 응집제용 미생물을 대량 배양할 수 있어 운용 비용이 크게 절감된다. 일례로 2018년 미국 미시간주립대 연구진은 해양 미세조류와 곰팡이를 결합하여 미세조류의 수확 향상에 더해 기름 함량 증가까지 이룬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각각 ‘나노클로롭시스(Nannochloropsis)’와 ‘모르티에렐라(Mortierella)’ 속(과와 종 사이의 분류 단위) 구성원인 이들 미세조류와 곰팡이는 둘 다 유용한 기름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노클로롭시스는 바닷물과 빛만 있으면 실험실 배양기에서는 물론이고 노천 연못에서도 잘 자라고, 기름 함량이 건조 중량의 최대 60%에 달한다. 특히 오메가3를 비롯한 고급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서 나노클로롭시스는 ‘녹색 황금’으로 불리며 건강식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아울러 유전체가 상대적으로 작고 단순해 첨단 생명공학 기술로 유전자 개량을 하기가 그만큼 쉽다는 이점도 있다. 한편 모르티에렐라는 하수를 이용해서 배양할 수 있어서 생물응집제 생산비용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참고로 모르티에렐라 오일은 피부 보습 및 항균 효과가 뛰어나 기능성 화장품 생산에 사용되고 있다. 

생물응집 실험 중 ‘뜻밖의 발견’
미세조류·곰팡이의 ‘공생’ 확인
과거 식물 자리 잡는 데 역할 추정

뜻밖의 발견 

미세조류 나노클로롭시스와 곰팡이 모르티에렐라를 함께 섞어 키우면서 전자현미경으로 이들의 결합 과정을 지켜보던 연구진의 시야에 흥미로운 광경이 들어왔다. 혼합 배양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곰팡이에 달라붙은 조류 모양이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매끈한 바깥층이 벗겨지고 그 아래에 있는 돌기들이 드러나면서 오톨도톨해졌다. 2019년도에 발표된 해당 논문을 읽던 나는 이 대목에서 허물없는 사이를 향한 몸짓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내 그 생각이 현실이 되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세조류가 급기야 곰팡이 세포 속으로 들어간다는 실험 결과를 접하면서 말이다. 

곰팡이 안에 자리 잡은 조류는 여전히 왕성하게 광합성을 수행했고, 증식도 이어갔다. 그렇게 미세조류와 곰팡이는 두 달에 걸친 혼합 배양 기간 내내 하나가 되어 잘 살았다. 사실 곰팡이와 조류가 한 몸처럼 사는 것 자체는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곰팡이와 미세조류가 얽힌 공생체, ‘지의류’는 일찍이 19세기 말에 발견되었다(‘땅옷’의 씨줄과 날줄, 경향신문 2020년 11월20일자 16면 참조). ‘나노클로롭시스·모르티에렐라’ 공생체에 눈이 휘둥그레지는 이유는 미세조류가 곰팡이 세포 안에 터전을 잡았기 때문이다. 지의류를 비롯해서 이제까지 발견된 곰팡이와 조류(또는 식물) 공생체에서는 항상 곰팡이가 조류를 감싼 상태에서 안으로 파고 들어가 있다. 

따지고 보면 곰팡이가 미세조류를 안으로 완전히 받아들이는 게 쌍방에게 훨씬 더 유리해 보인다. 이제부터 조류는 수분과 기타 영양소 걱정은 잊고 햇빛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다. 곰팡이 역시 유능한 농부를 들인 셈이니 이런 공생을 마다할 이유가 없을 터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공생 형태가 대략 5억년 전 식물이 땅 위에 자리 잡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는 추정을 내놓았다. 현재로서는 입증할 수 없지만, 그 가능성은 열려 있다. 

얼마 전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노랫말 일부를 말해주고 뒤에 연상되는 가사에 따라 연령대를 구별하는 장면을 보았다. 여러분은 ‘손에 손잡고’에 이어지는 가사로 어떤 게 떠오르는지 궁금하다. 혹시 ‘벽을 넘어서’는 아닌지?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 주제가 ‘손에 손잡고’는 당시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동서 이념 대립으로 직전 두 번의 올림픽(1980년 모스크바, 1984년 로스앤젤레스)을 반쪽으로 치른 세계인에게 다 함께 손을 잡고 냉전의 벽을 넘자는 메시지가 큰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그 이듬해인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 종식의 서막을 열었다. 

‘나노클로롭시스·모르티에렐라’ 공생체가 내 추억 속 그 노래를 소환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어떤 공간의 둘레를 막은 수직 건조물을 가리키는 ‘벽’은 비유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나 장애 또는 관계나 교류의 단절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보통 미천하게 여기는 미생물이 그 벽을 허물어 도약하는 모습에서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이라는 노랫말을 절로 되뇐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미세조류와 곰팡이의 ‘공생’…녹조라테도 ‘연료’가 된다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또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연재 중이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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