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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28)] 생명 연장을 꿈꾸던 메치니코프가 유산균을 먹으라고 강권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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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17 14:30:45

‘프로바이오틱’에 대하여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메치니코프는 장내 미생물에 천착
불가리아 농민들의 건강 장수 비결
그들이 즐겨 먹는 ‘사워 밀크’ 주목
프로바이오틱 이론의 시조가 된다

1880년대 중반, 러시아(현재 우크라이나 지역) 출신 생물학자 일리야 메치니코프는 이탈리아 시칠리섬에 머물며 불가사리의 먹이 소화 과정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불가사리 유충에게 주입한 붉은색 염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곧이어 특정 세포가 염료를 먹어 치운다는 사실을 알아낸 메치니코프는 이를 ‘식세포’라 칭하고, 이런 세포가 몸 안에 들어온 해로운 세균도 삼켜버린다는 주장을 펼쳤다. 현대 생물학 용어로 말해서, 비특이적(선천성) 면역이 알려지는 순간이다. 여행지에서 시작한 뜻밖의 연구는 그를 1908년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으로 이끌었다. 다른 한 명은 ‘항원-항체 반응’으로 대표되는 특이적(후천성) 면역을 발견한 독일 의사 파울 에를리히였다. 

노벨상을 받을 무렵, 메치니코프는 인간 수명 연장에 관심을 두고 장내 미생물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는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 몸에 독이 쌓이고 그 독의 대부분이 대장에 사는 수많은 미생물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들 미생물을 제어할 수 있는 물질은 노화를 늦출 거로 믿었다. 특히 사워밀크(sour milk·신맛 우유)를 많이 먹는 불가리아 농부들이 유럽 그 어느 지역 사람들보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것을 보고는 유산균(젖산균)이 풍부한 발효 유제품을 많이 먹으라고 강권했다. 그가 ‘프로바이오틱(probiotic)’ 이론의 시조가 된 까닭이다. 

프로바이오틱과 유산균 

현대 프로바이오틱의 공식 개념은
적당량을 섭취했을 때 숙주 건강에
유익한 효과를 나타내는 미생물

프로바이오틱이라는 용어는 1950년대에 등장하여 여러 의미로 사용되었다. 어원을 따져보면, 프로바이오틱은 항생제와 반대되는 의미를 지닌다. 1941년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된 ‘안티바이오틱(antibiotic·항생제)’은 ‘삶(bios)’을 ‘반대한다(anti)’라는 뜻으로 미생물이 만들어 다른 미생물, 특히 세균을 자라지 못하게 하거나 죽이는 물질을 이른다. 같은 맥락에서 ‘위한다(pro)’라는 접두사가 붙은 프로바이오틱은 미생물이 만들어 다른 미생물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물질을 뜻했다. 1980년대 접어들어 프로바이오틱은 숙주의 미생물 집단 균형에 도움을 주는 도입 미생물을 일컫는 용어로 쓰였다. 현재 통용되는 정의는 2002년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보건기구(WHO)가 주도한 전문가위원회 논의를 거쳐 합의된 것으로, 적당량 섭취했을 때 숙주 건강에 유익한 효과를 나타내는 살아 있는 미생물을 뜻한다. 

유산균은 특정 세균의 이름이 아니라 탄수화물을 발효하여 젖산을 만드는 세균 무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또한 유산균은 프로바이오틱 가운데 하나이지 그것과 동의어가 아니다. 사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다양한 발효 음식, 예컨대 우리나라의 김치와 서양의 요구르트 따위를 통해서 유산균을 섭취해 오고 있다. 메치니코프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 그가 신봉했던 사워밀크에 있는 유산균이 위의 강산성 위액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건강 증진에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을 거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이때부터 과학자들은 다양한 곳에서 건강 보조제로 먹을 수 있는 미생물을 찾기 시작했다. 심지어 인분도 후보지 목록에 올랐다. 

실제 오늘날 건강식품 산업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유산균은 일찍이 1900년에 갓난아기 똥에서 처음으로 분리한 것이다. 그 학명 ‘락토바실루스 아시도필루스(Lactobacillus acidophilus)’를 풀어보면, 젖에 있는(lacto) 막대균(bacillus)으로 산성(acido)을 좋아한다(philus)는 뜻이다. 이 유산균은 ‘그라스(GRAS)’ 등급, 즉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인정되어(generally recognized as safe) 프로바이오틱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바이오틱’ 

프로바이오틱 같은 생물학 전문 용어가 마치 일상어처럼 쓰이는 걸 보면서 이른바 ‘바이오 시대’에 살고 있음을 실감하곤 한다. 그러다 한편으로는 과연 그 의미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아마도 프로바이오틱은 건강에 도움을 주는 유익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제대로 알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한창 광고 문구에도 등장하는 ‘프리바이오틱(prebiotic)’은 무어라 생각할까? 솔직히, 자칫 프로바이오틱과 혼동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도 든다. 

프리바이오틱은 유익균의 성장을 돕고 활성을 유도하는 식품 성분을 일컫는다. 쉽게 말해서 유익균의 먹이인 셈이다. 얼핏 의아하게 들릴 수 있는데, 프리바이오틱이 되려면 소화가 잘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장내 미생물, 특히 대장에 사는 유익균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고 흔한 프리바이오틱은 ‘식이섬유’일 것이다. 식이섬유란 우리가 먹는 채소와 과일, 해조류 등에 들어 있는 섬유질(또는 셀룰로스)을 말한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섬유질을 소화할 수 없어서 섬유질은 분해되지 않고 그대로 대장에 도달한다(‘흰 소의 뒷모습에서’, 경향신문 2021년 12월24일자 14면 참조). 참고로 다소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저항성 녹말’ ‘펙틴’ ‘베타글루칸’ ‘자일로올리고당’ 따위도 주요 프리바이오틱으로 알려져 있다. 

대장에 사는 미생물은 식이섬유를 먹고, 다시 말해 발효하여 여러 가지 ‘짧은사슬지방산’(2~6개의 탄소 원자로 이루어진 지방산)을 내놓는데, 이것이 장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장내 pH를 적절하게 유지해서 유익균은 번성하게 하고 병원균 성장은 억제한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 물질은 창자 내면을 덮고 있는 ‘장관상피’의 치유와 재생, 그리고 점액 생성을 촉진한다. 

또한, 칼슘과 철분, 마그네슘 흡수를 증가시켜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도 가져온다고 한다. 일부는 특정 면역세포를 자극하여 인체 면역 기능에 관여하고, 심지어 장신경계에도 영향을 미쳐 잠재적으로 뇌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장내 미생물은 짧은사슬지방산 말고도 비타민과 아미노산, 항염증 물질 등 우리 건강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대사산물을 만들어낸다. 이런 물질을 일컬어 ‘포스트바이오틱(postbiotic)’이라고 한다. ‘프리(pre-)’와 ‘포스트(post-)’는 각각 ‘전’과 ‘후’를 뜻하는 접두사이니까 장내 미생물이 먹기 전, 먹은 후를 떠올리면 그 의미를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장내 미생물 

입에서 항문까지 어어진 소화관
그 속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존재
영양분 흡수에서 면역까지 관여
인간과 공생하는 장내 평화 유지군

창자 속에만 1000종의 세균 살아
젖산 생성 유산균의 영향은 일부분
생명 연장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흔히 튼튼한 장이 건강의 기본이라고 한다. 먹은 음식을 소화해 영양분을 흡수하는 기관일 뿐만 아니라, 장내 미생물이 포스트바이오틱을 매개로 인체 대사와 면역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입에서부터 항문에 이르는 우리 소화관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수많은 미생물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이들에게 창자는 집이자 식량 공급원이다. 본능적으로 자기 삶의 터전을 지키고 가꾸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이렇게 해서 우리 몸 일부가 된 장내 미생물은 풍파를 막는 든든한 지붕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런 지붕을 떠받치는 여러 기둥이 ‘00바이오틱’인 셈이다. 

현대 생물학은 이제 장내 미생물을 비롯한 인체 거주 미생물의 참모습을 상당 부분 파악했고, 이들과 조화로운 공생이 우리 건강의 필요조건이라는 사실도 분명하게 밝혀냈다(‘마이크로바이옴’, 경향신문 2022년 1월21일자 14면 참조). 하지만 이들 미생물의 정확한 기능과 그들 사이의 역동적인 관계 형성 원리, 그리고 그 결과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장내 미생물 연구의 현재 상황은 비유로 말하면, 집의 구조는 아는데 구체적인 건축 방식은 잘 모르는 격이다. 게다가 집을 보수하거나 개선하는 데에 쓸 수 있는 자재도 매우 제한된 형편이다. 

우리 창자에는 세균만 해도 대략 1000종이 살고 있다. 프로바이오틱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유산균도 이들 가운데 하나인데, 차지하는 비율이 의외로 낮다. 장 건강과 면역 기능 개선을 포함해서 프로바이오틱의 많은 장점이 보고되고 있지만, 여전히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프로바이오틱의 작동 원리 규명과 함께 좀 더 수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생물을 대상으로 한 프로바이오틱 발굴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사실, 알려진 장내 우점종에서 새로운 균주를 분리하여 이를 단순한 건강기능식품을 넘어 의약품으로 개발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메치니코프가 이탈리아에서 불가사리와 씨름하고 있을 즈음 미국에서는 한 시인이 당시로는 형식과 내용에서 파격적인 시를 쓰고 있었다. 월트 휘트먼은 <나 자신의 노래>에서 내가 3인칭이 되어 ‘1인칭인 나’를 ‘나 자신’이라고 부른다. 평론가들에 따르면, 휘트먼은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면서 힘찬 자아의 목소리를 들려준다고 한다. 총 52단락으로 이루어진 이 장시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대는 내가 누구이며 내가 뜻하는 바를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대의 건강을 도우려오. 그대의 피를 걸러주고 강화해 주리오./ 처음에 못 따라와도 계속 힘을 내오. 한 곳에 없으면 딴 곳을 찾아보오, 어딘가 멈추어 그대를 기다릴 테요(필자 번역).” 이 구절에서 시에 문외한인 어느 미생물학자가 프로바이오틱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았다면 나름 새로운 해석일까, 과학적 상상일까? 

 

출처 :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2202172149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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