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연세대학교 생명과학부

BK21 연세바이오시스템 교육연구단

소식과 동향

home  >  게시판  >  소식과 동향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21)‘맛있는 먹이는 못 참아’…기억에 의존하는 미생물의 이유 있는 식탐
  • 관리자
  • |
  • 103
  • |
  • 2021-08-06 14:56:20

미생물의 선택 능력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인생이란 B와 D 사이에 C’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출신 철학자 겸 작가 사르트르(Jean-Paul Sartre·1905~1980)가 남긴 경구라는데, B와 D는 각각 탄생(birth)과 죽음(death)을, C는 선택(choice)을 뜻하는 영어 단어 첫 글자이다. 거창하게 인생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매일 선택의 갈림길에서 망설이곤 한다. “오늘 점심에는 또 뭘 먹을까?”와 같은 고민 아닌 고민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오죽했으면 짜장면과 짬뽕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짬짜면’이라는 메뉴까지 등장했을까! 어디 그뿐인가? 큰맘 먹고 시작한 다이어트도 선택을 고민하다 작심삼일이 되기 일쑤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구석기인 

식탐, 모든 생물의 중요 생존 본능
인간은 에너지 과잉공급 탓 비만
음식 유혹 못 이겨 건강마저 해쳐
 

가만히 살펴보면, 다이어트는 운동을 게을리해서가 아니라 음식 조절을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운동 후 샤워를 마치고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소파에 앉아 마주한 TV 화면에서 흔히 만나는 이른바 ‘먹방’ 프로그램과 그 앞뒤를 장식하는 치킨과 피자, 그리고 음료 광고까지, 누구나 참기 어려운 충동을 느끼기에 십상이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하고 딱 오늘 하루만 먹자고 자기 합리화를 해본 경험이 있다면 먹을 것을 놓고 벌이는 본능과 이성의 싸움에서 이성이 이기기가 쉽지 않음을 잘 알 터이다. 

진화생물학적으로 보면, 인간이 식욕에 번번이 굴복당하고 마는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현대 생물학에서는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적어도 20만년 전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잘 알려진 대로 인류가 돌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시점부터 약 1만년 전까지의 시기를 ‘구석기시대’라고 한다. 구석기인들은 무리 지어 이동하며 채집과 사냥, 즉 수렵 생활을 했다. 자연이 주는 대로 먹고 살았다는 얘기다. 우아하게 말해서 제철 음식을 즐겼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아무튼 핵심은 먹거리를 구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의 삼시 세끼는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 소산이다. 당장 야생으로 눈을 돌려보자. 꼬박꼬박 끼니를 채우는 동물이 어디에 있나? 보통 야생동물은 어쩌다 실컷 먹고, 많은 시간을 배고픔과 싸워야 한다. 구석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먹거리 확보가 쉽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기회가 있을 때 가능한 한 많이 먹고 여분을 몸에 저장해 두는 게 분명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생물학 용어로 표현하면, 영양분이 풍부할 때 이를 최대로 흡수해 지방과 같은 고에너지 분자로 체내에 저장할 수 있게 하는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그렇지 않은 개체보다 굶주림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을 거라는 말이다. 그렇게 늘 배고픔에 시달리던 인류는 불과 100여년 전에야 비로소 기근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물론 세계 곳곳에 여전히 기아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이는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정치·사회적으로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다. 

아주 간단한 산수를 통해 인류 역사를 축약해 보면, 인류사의 99% 이상이 ‘구석기시대’에 속한다. 그렇다면, 인류는 이 지구에서 사는 내내 배고픔에 허덕이다 아주 최근에 와서야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몸이 지금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생물학적으로는 구석기인의 몸을 가지고 21세기의 문화적 삶을 살아가려다 보니 고통과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살과의 전쟁이다. 

살이 찌는 근본 이유는 에너지 과잉공급이다. 먹은 밥이 소화되면 주성분인 녹말(전분)이 포도당으로 분해되어 혈액으로 녹아 들어가 각 세포로 공급된다. 허기가 져 머리가 잘 안 돌아갈 때 흔히 당 떨어졌다고 말하곤 하는데, 제법 과학적인 표현이다. 포도당이 가장 중요한 신체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포도당 공급량이 너무 많아 미처 소비하지 못하고 남으면, 그 포도당은 앞으로 닥칠 굶주림에 대비해서 지방으로 바뀌어 저장된다. 먹거리 환경이 풍요로워졌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구석기인의 유전자가 불확실한 미래를 감당하기 위해 내리는 단호한 지령이다. 이런 명령이 반복될수록 살이 오른다. 역설적으로 인류가 힘든 시절을 잘 견뎌내게 한 원초적 본능이 이제는 유감스럽게도 건강을 해치는 식탐에 휘둘리게 하는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미생물의 식사 원칙 

세균들에게도 확고한 식사 원칙
‘소화 쉽고 칼로리 높은 먹이 섭취’
대장균 우습게 봤는데 꽤 똘똘
 

식탐은 모든 생물이 지닌 중요한 생존 본능이다. 보통 단세포로 사는 미생물은 자라서 커지면 두 개로 나뉘는 이분법으로 번식한다. 이들에게는 식탐에 빠져 먹기에 열중하는 게 삶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미생물, 특히 세균에게는 아주 확고한 식사 원칙이 있다. 세균은 제아무리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어도 가장 좋은 음식, 즉 소화(분해)하기 더 쉽고 칼로리가 더 높은 것부터 먹기 시작한다. 예컨대 대장균은 포도당이 있으면 다른 당류를 일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즉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에너지원이 있는데, 더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대장균이라고 우습게 봤는데 꽤 똘똘하다. 이런 탁월한 선택 능력 이면에는 상당히 복잡한 작동원리가 깔려 있다. 

세균 세포는 모든 공정이 가능한 자족형 공장처럼 작동한다. 개별 유전자에 담겨 있는 제조법에 따라 그때그때 필요한 주요 생산 도구, 즉 ‘효소’를 만들어낸다. 생물학 용어로 표현하자면 ‘유전자 발현’이다. 각 효소는 자기가 담당하는 특정 반응만을 수행하므로 하나의 공정은 여러 효소의 협업으로 이루어진다. 거의 모든 효소는 단백질이다. 단백질 합성에는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세포의 에너지 수급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비유컨대 세포의 유전자 발현 조절 원리는 가정에서 효율적이면서도 알뜰하게 가전제품을 가동하려는 노력과 닮은꼴이다. 냉장고는 항상 켜져 있다. 에어컨은 여름철에 외부 기온에 따라 적절하게 가동한다. 실내등과 TV는 하루에도 여러 번 켜기와 끄기를 반복한다. 모든 가전제품을 불필요하게 계속 켜놓으면 전기요금 폭탄을 맞아 가계에 부담은 물론이고, 생활에도 불편을 준다. 이런 상황은 세포에도 마찬가지이다. 필요한 단백질은 필요한 만큼 적시에 만들어야 하고, 불필요한 단백질은 애초부터 합성을 말아야 한다. 실제 세균은 확고한 원칙에 따라 유전자 발현 스위치를 상황에 맞도록 절묘하게 조절하는 장치, ‘오페론(operon)’을 갖추고 있다. 

세균의 DNA에는 기능적으로 연관된 유전자들이 서로 이웃해서 모여 있고, 그 무리 맨 앞에 스위치에 해당하는 조절 부위가 존재한다. 이런 유전자 무리를 일컬어 오페론이라고 한다. 조절 부위에는 유전자 발현을 켜는(ON) 스위치인 ‘프로모터(promoter)’와 끄는(OFF) 스위치인 ‘오퍼레이터(operator)’가 있다. 프로모터는 RNA 중합효소가 결합하여 전령RNA(mRNA) 합성을 시작하는 곳이다. 요즘 코로나19 백신으로 널리 알려진 mRNA는 인간 세포를 포함하여 모든 세포에서 단백질 합성에 필요한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오퍼레이터에는 ‘억제자(repressor)’ 단백질이 붙어서 mRNA 합성을 막는다. 

어느 세균의 기억 

미생물도 좋아하는 메뉴에 집착
기억으로 계산된 먹이 선택 ‘신기’
 

이번에는 글쓴이가 직접 경험한 세균에 관한 이야기이다. 국내 석유화학단지 토양에서 분리한 이 세균은 여러 가지 석유 유래 화합물을 빠르게 먹어 치우는 분해 능력을 과시한다. 게걸스러운 식탐을 확인하고 나자, 만약 이 세균에게 두 가지 화합물을 동시에 주면 어떨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화학 구조가 비슷한 화합물 A(벤조산)와 B(프탈산)를 함께 주고 키우면서 세균의 반응을 관찰했다. 이 세균은 A와 B를 동시에 맛보는 것이 아니라 A를 먼저 다 먹고 나서야 B를 먹기 시작했다. 순차적 먹이 선택은 예상한 결과였지만, 한 가지 의아한 점이 있었다. 화합물 B가 A보다 칼로리가 높아 분명 더 좋은 에너지원일 텐데, 왜 A를 먼저 먹느냐는 거였다. 

의문을 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알아냈다. 화합물 A는 토양에 흔하게 분포하지만, B는 상대적으로 훨씬 드물게 접할 수 있는 먹이였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에너지가 얼마나 많은가보다는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느냐가 먹이 선택 기준으로 작용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의문점이 해소되자 짓궂은 호기심이 발동해, 이 세균에게 A를 먹지 못하게 강제해 보기로 했다. 

화합물 A의 분해를 개시하는 유전자를 망가뜨려 변이 세균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A는 못 먹을 테니 냉큼 B를 받아먹을 거라 예상하면서, 이 세균에게 두 화합물을 함께 공급했다. 그러나 이 세균은 B만 있으면 즉시 잘 먹으면서도, A가 있는 상태에서는 B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자 변이 세균은 결국 굶어 죽고 말았다. 먹을 수 있는 B를 고스란히 남겨둔 채 말이다. 이 정도로 화합물 A에 집착한다는 건, 세균에게도 기억이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미생물의 계산된 식탐은 이들의 변치 않는 기억 덕분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하여 사고의 확장을 시도해보자. 유전자는 개체 생명을 이루는 기본 정보이자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정보이다. 말하자면, 자연선택의 단위로서 ‘자연이 남긴 정보의 궤적’이라 할 수 있다. 현존하는 유전자는 자연선택의 산물이기에 과거 특정 시공간의 자연환경에 대한 정보를 간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유전자는 자연의 변화와 흐름이 남긴 자국의 총체, 곧 장구한 지구 생명의 역사를 기억하는 매체라고 하겠고, 세균도 기억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김응빈 교수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108052037002&code=610100#csidx39140eb05ae2aa589d05eb6493dbc83  

다음글 조승우 교수팀, 뇌 환경과 유사한 뇌 오가노이드 배양 플랫폼 개발 - 치매, 파킨슨병 등 난치성 뇌질환의 연구 모델로 활용
이전글 [연세소식] 권호정 교수팀, 항암제 엘로티닙의 약물 저항성 관련 새로운 기전 제시
비밀번호 입력
비밀번호
확인
비밀번호 입력
비밀번호
확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