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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44)] 태어나는 순간 시작되는 노화…노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그게 섭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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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2 11:30:38

 

(44) 세균의 노화에서 얻은 단상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사진 크게보기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고 동식물 역시 노화를 거스를 수 없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막상 노화가 무어냐고 물으면 선뜻 답하기 쉽지 않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노화를 “질병이나 사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생체 구조와 기능이 쇠퇴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이라… 도대체 세월은 왜 홀로 가지 않고 굳이 젊음을 데려가야 한단 말인가? 야속함 속에 하릴없는 궁금증이 피어오른다.

 

현재 그 원인을 두고 여러 학설이 제시되어 있기는 하지만, 노화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생물학 이론은 아쉽게도 아직 없는 실정이다. 그만큼 노화 현상이 복잡하고 난해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생명’ 정의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생명 자체보다는 그것을 지닌 물체, 생명체의 특성을 연구하듯이, 연구자들은 노화를 특정하는 여러 현상 변화를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세포분열과 노화


인체의 세포가 커져서 나뉠 때마다

유전자는 점점 늙어간다는 사실

염색체 46개 각각 하나의 DNA 사슬

오타가 많으면 글의 질이 떨어지듯

돌연변이 쌓일수록 유전정보는 부실

 

생물학 관점에서 보면, 개체의 노화는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된다. 인간을 예로 들면, 갓난아기가 어린이를 거쳐 청년으로 자라면서 몸집이 커지는 이유는 그만큼 체세포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수많은 세포분열의 결과인데, 문제는 세포가 커져서 나뉠 때마다 유전자가 점점 늙어간다는 사실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본격적인 얘기에 앞서 몇 가지 용어를 짚어보고자 한다. 비유컨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모두 같은 천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가정하면, 그 천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DNA이다. 위아래 겉옷과 속옷 따위는 개별 염색체에, 각 옷에 달린 주머니나 단추, 깃 따위는 개별 유전자에 비유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모두 합친 것, 즉 현재 입고 있는 옷 전부가 유전체 또는 게놈(genome)에 해당한다.

 

인간의 46개 염색체는 각각 하나의 기다란 DNA 사슬이다. 각 염색체 양 끝은 특정 염기서열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마무리되어 있다. ‘텔로미어(telomere)’, 우리말로 ‘말단소체’라고 부르는 이 부위는 마치 신발 끈의 보호캡처럼 염색체 보호 기능을 한다.

 

얄궂게도 DNA를 합성하는 효소가 이 끝부분을 완전히 복제할 수 없어서 세포분열이 반복될수록 텔로미어가 점점 짧아진다. 예외적인 세포도 있다. 골수나 피부처럼 평생 보충해야 하는 조직의 줄기세포는 ‘텔로메라아제(telomerase)’라는 복구 효소를 한껏 가동하여 텔로미어를 온전히 유지한다.

 

일반 체세포는 텔로메라아제 활성이 없거나 그 수준이 너무 낮아서 DNA 복제 속도를 감당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텔로미어가 일정 수준 이하로 짧아지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할 수 없게 되면서 세포 안에서 여러 변화가 일어난다. 따라서 텔로미어 길이는 세포분열 횟수를 측정하여 세포 수명을 조절하는 계측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작동원리가 마냥 아쉬운 건 아니다. 무절제한 세포증식을 막아 체세포조직이 비정상적으로 커지지 않게 하여, 암 예방에 이바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 암세포는 텔로메라아제 활성이 높다.

 

DNA 복제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대상 원고의 사본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실제로 DNA는 4개 알파벳(염기)으로 쓰인 긴 글(염기서열)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타자수라도 실수로 오타를 내듯이 DNA 복제 효소 또한 아주 드물게 실수를 범한다. 이렇게 해서 DNA 염기서열에 돌연히 변이가 생긴다. 말 그대로 ‘돌연변이’다. 오타가 많아지면 그만큼 글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돌연변이가 쌓이는 만큼 유전정보가 부실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거듭되는 세포분열에 따르는 불가피한 돌연변이 축적과 텔로미어 마모가 세포 노화의 주요 유전적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토콘드리아와 산화스트레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발전소

노화 유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

영양소를 태우면서 에너지 만들어

‘불꽃처럼 타오르는 생명’ 표현은

문학적 은유가 아닌 과학적 사실

 

세포 노화를 일으키는 또 다른 내적 요인은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이다. 그 모양새가 용수철을 닮아서 각각 ‘실’과 ‘작은 알갱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미토스(mitos)’와 ‘콘드린(chondrin)’을 합쳐서 붙인 이름이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호흡’을 담당한다. 세포호흡이란 영양소를 분해하여 생명활동에 필요한 형태의 에너지, ATP를 합성하는 일이다. ATP란 아데노신3인산(adenosine triphosphate)의 줄임말인데, 영양소에서 뽑아낸 에너지를 담아두는 충전식 배터리로 이해하면 된다.

 

쉽게 말해서,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의 발전소’이다. 마치 화력발전소가 연료를 태워 전기를 생산하듯이 미토콘드리아는 음식을 소화해서 얻은 영양분을 태워서 ATP를 생산한다. 따지고 보면, ‘불꽃처럼 타오르는 생명’과 같은 표현은 단순한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고, 우리 체온이 그 생생한 증거다. 사실을 말하자면 호흡과 연소는 기본적으로 같은 화학 반응이다. 인공호흡과 모닥불에 하는 부채질은 모두 꺼져가는 생명과 불을 살리기 위한 노력 아닌가! 연소 과정에서는 빠르게 한꺼번에 에너지가 방출되지만, 세포호흡 과정에서는 천천히 단계적으로 에너지가 방출된다는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세포호흡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활성산소가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산소는 본디 반응성이 높은 물질이다. 깎아 놓은 사과가 얼마 지나지 않아 갈색으로 변하는 이유가 바로 산소와 반응(산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산소에 전자가 추가된 ‘활성산소’는 반응성이 더욱 높아져 DNA와 효소 단백질을 비롯한 세포 내 많은 물질을 닥치는 대로 산화시킨다. 이렇게 체내 활성산소가 많아지면서 생체 내 산화 균형이 무너지는 상태를 ‘산화스트레스’라고 한다. 지속하는 산화스트레스 속에서 세포 수명이 서서히 단축되고 결국 개체 수명도 줄어들게 된다. 미토콘드리아는 궁극적으로 산소에 전자를 전달하면서 ATP를 만든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전자의 배달 사고가 일어나 활성산소가 빈번히 생겨난다. 이렇게 되면 미토콘드리아는 물론이고 세포 전체로 피해가 퍼진다. 안타깝게도 미토콘드리아는 활성산소를 만들어 세포의 노화를 유발하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셈이다.

 

 

세균의 노화


세포분열 때 구극·신극의 비대칭은

낡은 단백질을 구극으로 몰아주며

개체군의 소멸을 막는 ‘내리사랑’

인류 생존의 ‘신비’를 말해준다

 

세포 하나가 곧 개체인 세균 대부분은 자라서 두 배로 커지면 똑같은 크기의 세균 둘로 거듭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세균은 늙지 않고 죽지도 않는다고(죽임을 당할 수는 있지만) 여겨왔다. 이른바 ‘이분법’으로 증식하는 세균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경구와는 반대로 분열할수록 더 잘 사는 셈이다. 그런데 2005년, 이런 오랜 통념을 깨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비유로 말하면, 이분법은 두부 한 모를 등분해서 두 모로 나누는 것과 같다. 나뉜 각 두부에는 원래 두부의 한쪽 면과 함께 새로운 절단면이 생긴다. 세균 세포로 치면 이전 세포벽 반대쪽 세포벽은 새로 합성된 것인데, 이를 각각 ‘구극(old pole)’과 ‘신극(new pole)’이라고 부른다. 구극은 분열 전 세포의 것이므로 이것을 기준으로 하면 각 세균 세포의 분열 순서, 곧 나이를 매길 수 있다. 그렇다면 설령 세포 겉모양은 같아보여도 나이가 다르니 분명 기능 면에서는 차이가 날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이분법은 먼저 DNA를 복제하고 세포 구성물질을 양분한 다음 세포가 두 개로 나뉘는 순서로 진행된다. 그런데 세포 구성물질 분할에 ‘질적 비대칭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세균 노화 연구는 주로 ‘미세유체공학(microfluidics)’ 기술을 이용하여 수행한다. 미세유체공학은 폭이 마이크로미터(㎛) 수준인 미세관에 미량의 액체 주입과 배출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며 원하는 실험과 검사를 수행하는 기술이다. 이를 미생물학에 적용하면 세균 한 마리를 대상으로 성장과 분열 모습을 그대로 관찰할 수 있다. 여기에 첨단 ‘생체이미징(bio-imaging)’ 기술을 입히면 DNA와 단백질 같은 생체분자의 활동과 상태, 상호작용 따위를 실시간으로 살펴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굵기가 머리카락의 100분의 1 정도이고 한쪽 끝이 막힌 미세관에 세균 한 마리를 넣고 이를 고성능 형광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세균에서는 세포막에서 세포호흡이 일어난다. 장소만 다를 뿐 활성산소가 생기는 건 마찬가지라서 세균도 산화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생체분자 손상을 피할 수 없다. 흥미롭게도 세균은 낡은 단백질을 구극 쪽으로 편향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게 되면, 세포분열이 거듭할수록 구극 쪽 세포는 기능적 노화가 가속하고 결국에는 죽음을 맞게 된다.

 

한 번 더 생각하면 세균 세포분열의 질적 비대칭성은 놀라운 생존 기술이 아닐 수 없다. 만약 부실한 생체물질을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면 노화는 개체군 수준에서 일어날 것이고, 종국에는 개체군 소멸에 이르게 될 테니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보면 이제껏 살아오게 한 진화의 필연적 산물이지만, 하찮은 미물(微物)의 행동치고는 무척 경이롭게 여겨지다가 얼마 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랑을 준 만큼 기대가 커진다. ‘내가 이만큼 사랑을 베풀었으니 최소 이 정도는 사랑받을 수 있을 거야’라는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상대는 번번이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랑을 준다. 불공정한 거래다. 괘씸하고 불의한 일이다. 그래서 관계 파탄의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지운다.”(김동규 <철학자의 사랑법> 중에서)

 

저자는 선물은 되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주는 것인데, 현실에서는 이런 선물이 갈수록 희귀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그는 이를 사랑이 증발하고 있는 징표로 해석한다. 사랑은 정의가 아니기에 공평한 거래를 이룰 수 없고, 보통 누군가에 대한 사랑의 정도는 준 만큼 받으려는 기대치와 반비례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사랑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이유라 하겠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 그대로다. 여기서 세균 세포분열의 질적 비대칭성이 내리사랑의 시원(始原)을 보여주고, 그래서 내리사랑은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한다면 억지스러운 비약일까?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태어나는 순간 시작되는 노화…노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그게 섭리다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미생물과의 마이크로 인터뷰>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등이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링크: https://www.youtube.com/@kimyesbio/featured.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출처 :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2305112217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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