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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29)] ‘표적 치료제’를 가능하게 해준 세균의 ‘생물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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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01 16:45:02

 

생명과 지향성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만약 휴대전화가 사라진다면, 사람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일상생활이 불편해질 게 분명하다. 길 찾기 앱에 목매는 길치인 내게는 당장 어딘가를 찾아가는 거 자체가 큰 도전이 된다. 거기가 어디든 실시간으로 목적지까지 안내해주는 내비게이션, 참 신통하다. 도대체 이런 게 어떻게 가능할까? 핵심은 바로 ‘위성항법장치(Global Positioning System)’, 곧 GPS다. 휴대전화에 내장된 GPS는 인공위성에서 위치 정보를 받아 내가 지구상 어디에 있더라도 그곳을 정확히 파악해 헤매지 않고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

 

GPS는 원래 군사용으로 개발되어 미 해군에서 1964년부터 운영했다. 1983년 구소련에 의한 대한항공 여객기 격추사건 직후, 당시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민간 목적으로 GPS 사용을 허용하면서 이 기술이 대중의 일상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리고 21세기에 접어들어, 급기야 GPS는 인류 문명사 내내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나침반을 뒷방으로 밀어내 버렸다.

 

보통 나침반은 지구의 자기를 이용해 자침으로 남북을 알려준다. 나침반은 중국에서 발명되어 기원전 4세기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나침반이 지구의 남북을 가리키는 이유를 알기까지는 그 이후로 근 200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의사이자 물리학자였던 영국인, 윌리엄 길버트(William Gilbert·1544~1603)는 1600년 출판한 저서 <자석에 관하여(De Magnete)>에서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자석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자철석으로 만든 지구 모형 ‘테렐라(Terrella·라틴어로 작은 지구라는 뜻)’를 이용해 이를 입증했다. 테렐라의 표면에 나침반을 갖다 대자, 마치 지구에서 방향을 찾기 위해 사용할 때처럼 작동한 것이다.

 

 

생물나침반


지구 자기장을 발견하기 전부터

철새·고래 등은 GPS 갖고 태어나

세균이 지닌 선천적 나침반

마그네토좀은 세균을 보호하기도

 

 

지구 자기는 지구 중심에서 회전하는 쇳덩이 때문이라는 이론이 일반적이지만, 현대 과학도 아직 완전한 설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튼 동물은 인간보다 훨씬 먼저 지구 자기의 존재를 알고 이를 이용했다. 철새와 고래에서 일부 물고기와 곤충에 이르기까지 많은 동물이 지구 자기장을 이용해 방향을 잡고 이동한다. 몸속 어딘가에 나침반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

 

생물나침반에 대한 첫 실험 증거가 나온 건 1950년대였다. 독일의 한 과학자가 철새 한 종을 커다란 새장에 가두고 비행 방향을 관찰했다. 새장 밖에는 태양을 흉내 내어 움직이는 전구를 설치했다. 관찰 결과, 이 철새가 날아가려는 방향은 인공태양의 위치에 따라 바뀌었다. 이를 그 과학자는 철새가 태양 위치를 기준으로 생물나침반을 이용해 비행하는 증거로 해석했다. 이윽고 1972년 철새 몸에 생물나침반이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었다. 앞선 새장 실험을 발전시켜 이번에는 자기장을 걸어주면서 철새의 이동 방향을 지켜봤다. 예상한 대로 자기장을 조정해 철새의 날갯짓 방향을 조정할 수 있었다.

 

생물나침반의 존재가 명확해지자 과학자들은 자연스레 그 실체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이어갔다. 현재 밝혀진 바에 따르면, 조류에는 최소한 두 개의 ‘자기감각(magnetoreception)’ 시스템이 있다. 부리 위쪽에 있는 구조체는 실제 나침반처럼 자철석이 주성분이고, 망막에 있는 것은 ‘크립토크롬’이라는 단백질로 되어 있다. 크립토크롬은 식물에도 존재하는데, 식물에서는 가시광선 가운데 청색광을 흡수하는 ‘광수용체’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서 빛을 인지해 그 방향으로 식물이 자라게 하는 식물의 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조류를 비롯한 동물에서는 크립토크롬이 빛을 받아 활성화되면 지구 자기장을 감지하는 ‘자기수용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성

 

‘주성(taxis)’이란 생명체가 외부 자극에 대하여 행하는 방향성이 있는 운동을 이르는 생물학 용어다. 우선 주성은 자극에 대한 움직임의 방향에 따라 두 가지, 곧 자극을 향하면 양(positive), 그 반대로 가면 음(negative)의 주성이라고 한다. 또한 빛이나 물, 특정 화학물질 따위 같은 자극 종류에 따라 주광성·주수성·주화성 등으로 구별한다. 예컨대 빛을 향하는 식물의 잎과 줄기는 양의 주광성이다.

 

주성이라 하면 흔히 동식물만을 떠올리기 쉬운데, 사실 주성의 최고봉은 세균이다. 세포 하나가 곧 개체인 세균은 너무 작아 개별적으로는 맨눈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심해 화산 분화구에서 동물 소화관에 이르기까지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 가운데 가장 널리 퍼져 있다. 세균의 이런 능력은 주변 환경 변화를 정확하게 인지해 기민하게 움직이는 주성에서 비롯된다.

 

세균은 주성을 통해 먹이와 살기(증식하기) 좋은 곳을 찾아간다. 이를 위해 세균은 주변과 세포 내 환경 조건을 파악하고 그 정보를 전달하는 정교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단백질을 비롯해 여러 세포 내 조절물질이 관여하는 이 신호전달은 주로 세균의 편모로 향한다. 세균이 모터보트라면 편모는 모터로 움직이는 프로펠러에 비유할 수 있다.

 

편모가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 세균은 전진하고, 반대로 회전하면 진행 방향이 꺾인다. 대장균의 경우, 편모가 1초 정도 반시계 방향으로 돌다가(전진), 0.1초 정도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방향을 전환한다. 이런 순환이 반복되면 결국 무작위 운동을 하게 되어 방황하는 모양새가 된다. 세균의 이런 평소 움직임을 감성적으로 표현하면, 하릴없이 이리저리 헤매는 나그네 모습이라 하겠다. 그러다 특정 신호가 감지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방황을 멈추고 용의주도하게 편모를 휘저으며 방향성 운동을 시작한다.

 

1975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소재 우즈홀 해양연구소에서 갯벌 진흙 세균을 분리하던 연구원이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진흙물 한 방울을 슬라이드글라스에 떨어뜨려 현미경으로 관찰하는데, 한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세균이 포착된 것이다. 순간 그는 실험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에 주광성을 떠올렸다. 그러나 빛을 차단해도 문제의 세균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호기심에 작은 자석을 현미경 근처에서 움직였더니 놀랍게도 그 세균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른바 ‘주자성 세균’이 세상에 데뷔한 순간이다.

 

 

주자성의 쓸모


‘나노 자석’을 지닌 주자성 세균

독성도 낮아 의료용으로 각광

항암 약물 효과적 전달 매개체

인간의 생명연장에도 큰 도움

 

 

주자성 세균은 몸(세포) 안에 ‘마그네토좀(magnetosome)’이라고 부르는 나노 자석을 가지고 있다. 마그네토좀은 세포막이 함입해 자철광 입자를 둘러싼 형태인데, 입자 크기나 개수는 세균에 따라 다양하다. 너비 50~100나노미터(㎚)짜리 자성 입자가 적게는 몇 개에서 많게는 100개 정도가 연결된 구조체이다. 참고로 1㎚는 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한다.

 

마그네토좀은 세포막 변형, 철분 흡수 및 결정화, 사슬 형성 등 상당히 복잡한 경로를 거쳐서 만들어진다. 합성에 참여하는 유전자 수만 해도 보통 40개가 넘는다. 왜 이들 세균은 이토록 품을 많이 들여서 굳이 자석을 만들려는 걸까?

 

현재까지 알려진 주자성 세균은 모두 바다 또는 민물에 살며 편모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산소에 민감해서 공기보다 낮은 산소 농도를 선호하거나, 산소가 있으면 아예 살지 못하는 것도 있다. 마그네토좀은 세균이 저산소 또는 무산소 환경에 머무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 근거는 이렇다. 일반적으로 북반구나 남반구에서는 자기장이 수직 방향으로 형성되는데, 주자성은 이러한 자기장의 방향성을 이용해 적당한 수심에 해당 세균이 위치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주자성 세균은 물속에서 유산소층과 무산소층 경계에 서식한다.

 

또한 마그네토좀은 과산화수소(H₂O₂)를 분해할 수 있다. 물(H₂O)에 산소 하나가 더 붙은 이 화합물은 강한 산화작용을 해서 대개 3% 수용액을 만들어 소독제나 표백제로 사용한다. 과산화수소는 산소가 있으면 세포 안에서 저절로 만들어지곤 한다. 따라서 마그네토좀은 세균에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는 과산화수소의 축적을 막아 세포를 보호하는 기능도 분명 수행할 것 같다. 그리고 이 정도면 주자성 세균이 애써 자석을 만드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하겠다.

 

마그네토좀은 비단 특정 세균에게만 쓸모가 있는 게 아니다. 우리도 이 세균 자석을 매우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항암 약물을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 의과학 분야에서는 이미 인공적으로 만든 나노 자석에 약물을 실어 투여한 다음, 몸 밖에서 자기장을 이용해 표적 부위로 약물을 보내는 치료법을 개발해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인공 자석보다 세균 자석이 생체적합성이 뛰어나 인체에서 이물 반응이나 염증을 거의 일으키지 않는 데다 독성은 낮아서 의료용으로 훨씬 더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마그네토좀을 이용한 약물 전달체 연구에 큰 노력이 집중되고 있다.

 

19세기 중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였던 독일의 프란츠 브렌타노(Franz Brentano·1838~1917)는 물리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를 구분 짓는 특징은 ‘지향성(intentionality)’ 단 한 가지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생각이 늘 무언가와 연관된 것처럼 정신적 세계에는 지향성이 있지만, 물리적 세계는 그렇지 않다. 사물에는 지향성이 없다. 그러나 이를 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에는 지향성이 있다. 브렌타노는 고통처럼 본능적이고 생각 없는 것조차도 지향성을 갖고 있다고 했다. 고통이 지향하는 것은 우리 몸의 손상에 대한 경고라고 하면서 말이다.

 

한마디로 생물학은 생명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생물학자들은 주로 생명의 ‘통일성(unity)’, 다시 말해 모든 생명현상을 포괄할 수 있는 단일한 특징을 추적한다. 그 결과, 모든 생명체가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든가, 기본적으로 같은 화학반응에 기초한다든가, 아니면 DNA라는 공통 언어로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 등을 발견했다. 그런데 흔히 하찮게 여기는 세균이 자석을 만들어 주도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면서 바로 지향성이 이 모든 지적 성취를 포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출처 :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2203172059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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