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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39)] 잘 먹고 잘 살고 싶어한 죄밖에 없는데…미생물은 억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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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3 11:39:28

(39) 미생물의 법정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인간의 법정이었어….”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SF 뮤지컬 <인간의 법정>에서 주인공 ‘안드로이드(android)’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다. 안드로이드란, 인간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인간과 닮은 행동을 하는 로봇 또는 그런 지적 생명체, 곧 인조인간을 이르는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안드로이드가 보편화한 22세기, 한 남자가 인조인간을 동생으로 대하며 생활한다. 그런데 자기 DNA를 바탕으로 만든 로봇 아우에게 사람과 같은 의식이 없음이 못내 아쉬운 그는 불법으로 의식 생성기를 설치한다. 이제 의식을 갖게 된 주인공은 영락없는 인간처럼 되지만,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긴다. 안드로이드가 정체성 혼란에 빠져 종종 본분을 잊고 로봇이 지켜야 할 규칙을 무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언쟁 중에 안드로이드가 주인을 살해하는 참사가 벌어지고 만다. 

이내 정상 상태로 돌아온 안드로이드가 자책하고 후회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경찰에 체포되면 재판 없이 바로 폐기될 운명에 처한 주인공은 로봇 전문 변호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이어서 치열한 법정 공방이 펼쳐진다.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고찰해 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감독의 말대로, 극장을 나와서도 한동안 인간중심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거듭된 생각이 미생물에 관한 과학적 상상으로 이어졌다. 

상상의 발단이 된 사건 

1976년 미국재향군인회 행사에서
참전 용사 34명 사망한 충격 사건
범인으로 ‘레지오넬라’ 균을 지목

흉악한 병원균으로 대중에 각인

 

 

 

이야기는 1976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재향군인회(American Legion)는 미국 건국 200주년을 기념해 수백 명의 노병을 초청하여 필라델피아에서 성대한 행사를 치르고 있었다. 필라델피아는 미국 독립이 선언되고 연방 헌법이 제정된 역사적 도시로 미 동부 펜실베이니아주의 최대 도시다. 그런데 갑자기 참전 용사들 가운데 221명이 폐렴 증세를 보였고, 안타깝게도 34명이나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주최 측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보건당국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당장 원인균을 찾아낼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다. 반년 이상을 불철주야 매진한 끝에 마침내 문제의 병원균 색출에 성공했고, 이 범인을 ‘레지오넬라(Legionella)’라고 명명했다. 재향군인회를 뜻하는 영어 단어 ‘레지온(legion)’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감염병은 ‘레지오넬라증(legionellosis)’으로 불리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레지오넬라증은 일명 ‘재향군인병’으로 불리는 폐렴과 특별한 치료 없이도 호전되는 급성 질환인 ‘폰티악열(pontiac fever)’, 이렇게 두 감염병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2016년 이후로 레지오넬라균이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다. 열대야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그해 여름, 한 지역 숙박시설에서 레지오넬라증 환자가 발생했다. 시설 내 곳곳에서 허용 범위를 넘어서는 많은 레지오넬라균이 확인되었고, 해당 업소에는 사실상 폐쇄 조치가 내려졌다. 국내에서 레지오넬라균이 일으킨 첫 사고였다. 이를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하면서 레지오넬라는 폐렴을 일으키는 흉악한 병원균으로 대중에 각인되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어디서 갑자기 레지오넬라균이 나타났을까? 사실, 그 자초지종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레지오넬라균에게 전적으로 죄를 돌리는 게 맞는지 싶다. 다음은 미생물학 지식을 바탕으로 역지사지 상상해 본 레지오넬라균을 위한 변론이다. 

고체 한천 배지 위에서 자라고 있는 레지오넬라균 무리.

고체 한천 배지 위에서 자라고 있는 레지오넬라균 무리.

미생물 전문 변호사의 변론 

강·호수 등 민물에서 살던 미생물
의지와 무관하게 도시로 옮겨져
성장과 번식을 한껏 하다보면
인간에게 감염을 일으키기도 해

피고 레지오넬라 족속이 원래 사는 곳은 강과 호수, 지하수 같은 민물입니다. 이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그곳에서 조용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이 중앙 냉방이라는 것을 시작하더니 이들을 낯선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1976년 노병들이 묵었던 호텔은 인근 강물을 끌어다 냉각수로 사용했습니다. 그때 거기에 살고 있던 레지오넬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물과 함께 호텔 냉각탑으로 끌려갔습니다. 정든 고향과 생이별을 하게 된 그들은 호텔의 대형 냉각탑 안에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다 일부는 우연히 물방울을 타고 냉각수에서 냉방 배관으로 옮겨져 노병들 호텔 방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또다시 새로운 환경에서 어리바리해지고 있는데, 갑자기 또 어디론가 빨려 들어갔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따뜻하고 촉촉한 느낌이 아주 좋았고 먹을 것도 많았다고 합니다. 어두운 것만 빼고는 그야말로 낙원이어서 그동안 겪은 고생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고 실컷 먹고 놀았답니다. 한마디로 성장과 번식을 한껏 했다는 얘기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들숨에 빨려들어 노병의 허파 속으로 들어온 거였습니다.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억울해서 울컥한다고 토로합니다. 이어서 대장균의 참고 증언을 청취하겠습니다. 

우리 미생물 친척 가운데에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못된 ‘병원균’들이 더러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들 때문에 인간의 조력자라 할 수 있는 대다수 미생물까지 매도되는 것은 유감입니다. 특히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잘못된 장소로 옮겨져 병원균이라는 누명을 쓰는 것은 정말 억울합니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의 성장이 인간에게는 감염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병원성이 없거나 미약한 미생물인데, 면역이 떨어진 사람에게 감염병을 일으키는 일도 있습니다. 이른바 ‘기회감염’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선한 미생물이라도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곳에 있으면 모두 병원균 신세가 되고 마는 사정을 참작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모든 생명체는 저마다의 방식대로 생명을 이어 갑니다. 레지오넬라균은 자연에 있는 담수에서는 물론이고 대형 건물의 냉각수와 저수조 같은 인공 환경에서도 잘 삽니다. 따라서 인간은 해당 시설에 있는 물을 정기적으로 점검해서 이들이 인체로 강제 이주당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조처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특정 감염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은 극히 일부이니, 이들만 보고 미생물 모두를 병원균으로 매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미생물도 어떻게든 잘 살아 보려고 갖은 애를 씁니다. 미생물에게 ‘잘 살기’란 가능한 한 많이 먹고 빨리 자라서 종족 수를 최대한 늘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먹고 자라기에 몰두합니다. 이런 특성 탓에 의도치 않게 인간에게 불편을 끼치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생활 방식을 완전히 바꾸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직시하고 서로 피해를 주지 않도록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자는 겁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곧 ‘지혜로운(sapiens) 사람(Homo)’이라는 공식 이름(학명)에 걸맞은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상상에서 현실로 

자초지종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전적으로 죄를 돌리기는 어려워
미생물과의 공존은 피할 수 없어
인간중심주의 극복 노력이 필요

번듯하게 동식물 축에 끼지 못하는 생물을 몽땅 미생물이라고 부른다. 동식물을 제외하면 남는 게 뭐가 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당연하고도 좋은 질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남는 게 없는 게 아니라 남는 게 없어 보이는 것이다. 대부분은 너무 작아서 맨눈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무시당하는 게 억울했는지 이들 가운데 일부가 요사이 부쩍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고약한 모습으로 말이다. 2009년 조류인플루엔자(AI·avian influenza)로 인해 처음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신종 감염병’은 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일상적인 뉴스가 되어버렸다. 

이런 지경이니 보통 사람들이 미생물을, 병을 일으켜 건강을 위협하고 음식을 썩게 해 생활에 불편을 주는 해롭고 더러운 생물로 여기는 건 당연하다. 안타깝게도 이건 하나만 알고 훨씬 더 큰 두 번째를 몰라서 생기는 걱정스러운 오해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훨씬 소수고, 대다수 미생물은 우리 인간은 물론이고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이 삶을 이어가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가 매일 엄청나게 배출하는 생활 쓰레기(음식물 찌꺼기, 분뇨, 생활하수 등)만 생각해봐도 미생물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만약 미생물이 활동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깨끗한 물을 더는 마실 수 없고 머지않아 우리가 버린 쓰레기 더미에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이처럼 미생물은 우리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한없이 유용한 존재이기도 하지만 코로나19처럼 전 인류를 공포와 혼란으로 몰아넣을 만큼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앞서 상상해 본 미생물 전문 변호사는 보통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미생물의 참모습을 제대로 발견한 사람이다. 요컨대, 그는 무조건 미생물을 옹호하지 않고 이들을 올곧이 대변하고 있다. 사람들이 미생물에 대해 가진 편견과 오해를 해명하고, 미생물과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실제 미생물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인간이 미생물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이제 인간도 지구 생태계를 이루는 일원일 뿐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기 어려울 것이다. 미생물의 법정에서 내리는 판결이다! 

▶김응빈 교수

[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잘 먹고 잘 살고 싶어한 죄밖에 없는데…미생물은 억울합니다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미생물과의 마이크로 인터뷰>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등이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과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운영 중이다. 유튜브 채널 링크: https://www.youtube.com/@kimyesbio/featured.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출처 :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environment/environment-general/article/20221222211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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