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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22)오염물 먹고 자라는 먹성 좋은 미생물도 ‘플라스틱은 정말 낯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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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03 13:09:41

환경을 지키는 미생물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더러운 유기물 먹는 청소부 역할로
흐르는 물을 썩지 않게 하는 미생물
인공합성 물질 분해 능력은 떨어져
 

‘줄이고·재사용·재활용’ 3R에 더해
바이오기술로 미생물 ‘재설계’ 필요
플라스틱을 더 잘 먹는 미생물이나
미생물이 잘 먹는 플라스틱 연구 중
 

유수불부(流水不腐).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사자성어이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환경 변화에 대응을 게을리하고 마냥 안주하면 도태되기 쉬우니, 자기 계발에 부단히 힘쓰라고 독려할 때 흔히 인용하는 말이다. 억지스러워 보일 수 있지만, 미생물학 관점에서 보면 이 경구의 주인공은 미생물이다. 우리가 볼 때 ‘썩지 않음’은 물에 있는 유기물을 미생물이 말끔히 먹어치운, 곧 완전히 분해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오염된 자연환경이 저절로 깨끗해지는 이른바 ‘자정 능력’의 실체가 바로 미생물이다. 흐르는 물은 미생물 청소부가 숨 쉴 산소를 원활하게 공급한다. 그런데 청소량이 많을수록 이들 미생물은 그만큼 더 많은 산소가 필요하다. 이렇게 미생물이 오염물 분해 과정에서 요구하는 산소량을 말 그대로 ‘생물학적 산소 요구량(biochemical oxygen demand·BOD)’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BOD는 오염물량에 비례해 커진다. 

자연수에 녹아 있는 산소량, 곧 ‘용존산소량’은 1ℓ당 10㎎ 정도인데, 보통 하수의 BOD는 이것의 20배에 달한다. 이런 물이 그대로 강이나 호수로 흘러 들어가면, 거기에 사는 미생물은 특식을 한껏 즐기게 된다. 문제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용존유기물’을 미생물이 분해하면서 용존산소량이 급감한다는 사실이다. 용존산소 고갈은 종종 물고기 떼죽음으로 이어져 연쇄적으로 심각한 환경 피해를 일으킨다. 

자연에 부담 덜어주기 

모여 사는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에 인간이 배출하는 쓰레기와 폐수 정도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자연에서 시나브로 사라졌다. 하지만 도시가 커지고 거주 인구가 급증하면서 자연의 자정 능력은 한계를 넘어 한때 붕괴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다행히 자연에 부담을 덜어주는 폐기물 처리 기술이 속속 개발되어 활용되면서 한숨을 돌렸다. 예컨대 화장실에서 용변 후 내린 물은 정화조에 머물렀다가 하수도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각종 도시 하수는 곳곳에 마련된 처리 시설을 거쳐 자연수로 나간다. 과거에는 ‘하수(또는 폐수)처리장’이라고 불리며 혐오 시설로 인식되었던 처리 시설이 요즘에는 ‘물재생센터’로 불리며 환경 교육과 체험학습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보통 하수 처리는 흡사 수영장 같은 큰 수조에 물을 가둬 뜨는 부유물과 가라앉는 찌꺼기를 제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때 바닥에 침전된 물질을 ‘슬러지(sludge)’라고 부른다. 1차 처리는 기본적으로 물리적인 방법이지만, 오수가 머무르는 동안 미생물이 용존유기물과 슬러지 일부를 분해한다. 일반적으로 1차 처리로 하수의 BOD가 30%가량 줄어든다. 나머지는 2차 처리 과정에서 대부분 제거된다. 

미생물의 분해 능력에 의존하는 2차 처리 과정은 기본적으로 미생물 배양과 다름없다. 말하자면 미생물이 더러운 물속 오염물을 먹어치우며 무럭무럭 자란다는 얘기다. 실제로 2차 처리조에는 공기를 불어 넣어 미생물의 성장과 분해능을 촉진한다. 증식한 미생물은 뭉쳐서 밑으로 가라앉는데, 이를 ‘활성 슬러지’라고 한다. ‘활성(activated)’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이유는 분해 미생물이 슬러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2차 처리가 끝난 물은 통상 염소 소독을 해 방류할 수도 있고, 잔존 BOD와 질소나 인 따위를 비롯한 무기염류를 더 제거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3차 처리를 하기도 한다. 보통 3차 처리는 화합물을 이용한 침전과 필터를 이용한 여과로 이루어진다. 

1·2차 처리 과정에서 나온 슬러지는 ‘무산소 슬러지 소화조’로 보내져 산소가 없는 상태에서 처리된다. 2차 처리가 유산소 호흡 미생물의 작품이라면, 슬러지 분해(소화)는 무산소 호흡(‘생명의 순환고리’, 경향신문 5월14일자 16면 참조) 미생물이 담당한다. 쉽게 말해, 산소 없이 숨 쉬는 미생물들이 슬러지를 먹어치운다는 얘기다. 특히 산소를 만나면 즉사하고 마는 ‘메탄 생성균’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 덕분에 슬러지에 있는 유기물 대부분이 최종적으로 메탄으로 전환된다. 이렇게 생산되는 메탄은 보통 처리 시설의 난방 또는 동력 연료로 사용된다. 슬러지 소화 과정이 끝나고 남은 찌꺼기마저도 수분을 제거해 토양 개량제로 쓸 수 있다. 이 정도면 미생물이 주도하는 물재생은 ‘재활용(recycling)’을 넘어서는 ‘새활용(upcycling)’ 수준이라 하겠다. 

미생물도 난감하다 

1997년 태평양 한가운데 무풍대(바다에서 1년 내내 또는 계절에 따라 바람이 거의 없는 지역)에서 지도에 없는 거대한 섬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존재에 대한 경이는 이내 그 실체에 대한 경악으로 바뀌었다. 대략 한반도 면적의 6배에 달하는 섬은 바다로 유출된 플라스틱이 해류를 타고 몰려와 만들어진 쓰레기 더미였다. 

현대인 대부분이 거의 플라스틱 중독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비닐봉지와 각종 일회용 용기, 빨대 등 우리가 매일 무심코 사용하고 버리는 플라스틱 제품을 곰곰 따져보자. 나는 중독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한국은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 부문에서 세계 일등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으니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줄잡아 매년 거의 2000만t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유출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제 망망대해 그 어디에도 플라스틱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심지어 남극 바다에서도 플라스틱 파편, 특히 ‘미세플라스틱’이 발견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지름 5㎜ 미만인 플라스틱 입자를 일컫는 말이다.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은 강렬한 햇빛 아래 파도에 휩쓸리면서 서서히 부서진다. 하지만 플라스틱은 앞서 살펴본 오수 속 유기물처럼 완전히 분해되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계속 작아질 뿐이다. 자정 능력을 담당하는 해양 미생물이 본분을 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미생물은 모든 천연물질을 분해할 수 있다. 그러나 플라스틱처럼 본래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합성 물질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생물이 접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모른다. 조금 학술적으로 말하면,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대사 경로 또는 효소가 없거나, 있더라도 활성이 낮다. 그나마 플라스틱을 분해하더라도 그 속도가 너무 느리다. 낮은 수온을 비롯한 제반 환경 조건에서 아무리 먹성 좋은 미생물이라도 선뜻 생소한 플라스틱을 먹어치우기는 힘들다. 그들도 난감하다. 

3R 전략 플러스알파 

바다는 인류 삶의 보고이자 근원이다. 다양한 수산자원과 쉼터를 제공함은 말할 나위도 없고, 바다는 지구의 기후 균형을 잡아주는 중추이다. 그러므로 플라스틱 오염과 같이 인간의 활동으로 야기된 해양 생태계 변화는 전 지구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비교적 큰 미세플라스틱은 물고기와 새를 비롯한 큰 해양 동물에게 위협이 되고, 작은 미세플라스틱은 먹이사슬 아래쪽에 있는 조개와 동물성 플랑크톤 따위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들이 섭취한 미세플라스틱은 결국 단계적으로 먹이사슬 위쪽으로 전이되어 축적된다. 이 상태가 지속한다면, 해양 생물과 생태계는 물론이고 결국에는 인류 건강에 재앙을 초래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지 않게 하려면 전 지구인의 실천적 노력이 절실하다. 실제로 플라스틱 쓰레기를 범지구적 차원의 위협으로 보는 대중의 인식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가정에 이르기까지 폐플라스틱 배출은 최대한 줄이고(Reduce), 재사용(Reuse)과 재활용(Recycle)은 최대한 늘리려는 이른바 ‘3R 전략’이 전 세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R 전략이 이미 바다를 점령한 미세플라스틱에 대해서는 별 소용이 없다. 그런 데다가 철기시대를 이은 ‘플라스틱 시대’라고도 불리는 현대를 살아가면서 플라스틱과의 결별도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다행히 플라스틱 분해 미생물이 바다에 존재한다. 이들은 플라스틱 표면에 들러붙어 능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달려드는 미생물이 좀 더 쉽게 분해할 수 있는 플라스틱을 만들어 사용한다면 향후 미세플라스틱 발생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당면한 미세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해 더욱 중요한 ‘재설계(Redesign)’ 대상은 미생물이다. 현재 미생물 재설계는 첨단 바이오 기술을 동원해 두 가지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생분해가 잘되는(쉽게 말해 잘 썩는)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는 미생물과 플라스틱 분해 능력이 뛰어난 미생물을 각각 개발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자연! 우리는 자연에 둘러싸여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자연에서 떨어져 나올 힘도, 자연을 넘어서 나아갈 힘도 없이.” 현재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과학 학술지 ‘네이처(Nature)’ 1869년 11월4일 자 창간호 머리글을 여는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아포리즘이다. 이 글을 쓴 당대의 거물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괴테의 말을 인용해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경외심을 강조함으로써 네이처 창간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으로 추측한다. 나아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 중심적 환경관에서 벗어나 생태주의적 가치관으로 의식을 전환하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생각의 전환(Rethinking)’, 곧 다섯 번째 ‘R’이 4R이라는 네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모는 운전자가 될 때 비로소 당면한 환경문제를 제대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응빈 교수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109022132002&code=610100#csidxc3d2aee6e0206d8a43689d3cd9df9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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