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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30)] 감염병 창궐 시대…박쥐는 인간의 각성을 촉구하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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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4-15 11:53:42

박쥐와 미생물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5000만년 전부터 지구에서 살아온 유일한 비행 포유류 ‘박쥐’

기회주의자를 상징하고 신종감염병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억울할 수도 있지만…사실 박쥐는 다양한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고

‘기회주의적’ 면역 체계는 무증상 감염 상태로 질환을 전파한다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박쥐의 비밀을 푼다면 역병 걱정도 사라질 텐데…



‘옛날,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어릴 적 울 할머니 옛날이야기는 늘 이렇게 시작했다. 한글을 깨치면서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던 그림 동화책에서도 곰방대를 입에 물고 근엄하게 앉아 있는 호랑이를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난다. 흡연의 건강 위험성을 알리는 섬뜩한 공익 광고와 함께 금연 캠페인이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금 기준으로 보면 분명 부적절한 내용이다. 천진난만한 새싹들이 자칫 흡연을 거리낌 없이 좋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나친 노파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시절에 접한 인상이나 느낌은 뇌리에 각인되어 평생토록 기억에 그대로 자리할 수 있음을 환기하고자 함이다.


요즘에는 박쥐 하면 코로나바이러스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 같다. 박쥐가 보유숙주라는 점에서 이 연결은 미생물학적으로도 합당해 보인다. 그런데 정작 미생물학을 전공한 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기회주의자가 먼저 연상된다. 박쥐에 대한 내 선입견 또는 편견이 만들어낸 이미지이리라. 추측건대, 산타클로스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시절에 이솝우화에서 읽은 박쥐 이야기가 이런 왜곡된 인식 형성에 일조하지 않았나 싶다. 추억에서 그 박쥐를 잠시 소환해 본다.

 

옛날에 날짐승과 들짐승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박쥐는 전세에 따라 유리한 쪽에 번갈아 붙으며 알랑대다가 결국, 양쪽 동물 모두에게 배신자로 찍혀 공공의 적이 되고 만다.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게 된 박쥐는 하는 수 없이 동굴에 숨어 지내며 밤에만 몰래 나다니는 외롭고 처량한 삶의 길로 들어선다. 박쥐라는 이름도 밤에 행동하는 쥐, ‘밤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리고 우세한 쪽에 붙는 교활한 기회주의자를 뜻하는 ‘박쥐 같은 인간’이라는 관용어에서 보듯이 박쥐는 인간 세상에서도 배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박쥐의 참모습


박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포유류에 속한다. ‘종·속·과·목·강·문·계’로 나누는 생물 분류체계에서 포유강에 포함된다. 생물학적으로 박쥐는 박쥐목 구성원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도 한데, 지금까지 확인된 박쥐만 해도 1400여종에 달한다(batnames.org). 이는 설치류 다음으로 많은 수치로 전체 포유류 종의 약 20%에 해당한다. 그런데 그렇게 종류가 많아 봐야 박쥐인 이상 인간에게 비호감이긴 매한가지여서 기회주의자를 넘어 흡혈귀로 인식되기도 한다. 실제로 알려진 흡혈박쥐는 단 세 종에 불과하지만, 소설 <드라큘라>와 여러 영화에 주연급으로 발탁된 탓에 치러야 하는 유명세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박쥐는 신종 감염병을 퍼뜨리는 주범으로까지 몰리고 있다.


새처럼 날 수 있는 유일한 포유동물인 박쥐는 앞발이 변하고 피부가 늘어나서 날개처럼 되었다. 시각은 안 좋지만, 성대에서 초음파를 내보내고 그 반사음을 귀로 받아 거리와 방향을 가늠한다. 말하자면 최첨단 레이다를 장착하고 어둠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비행한다는 얘기다. 화석 기록에 따르면, 박쥐는 적어도 약 5000만년 전에 지구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조상 박쥐는 음파 탐지 능력이 없어 시각과 후각, 촉각 등에 의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된 박쥐 화석의 골격이 다른 것으로 보아 이미 아득한 옛날에 박쥐의 종분화가 이루어졌던 것 같다. 오늘날 박쥐는 나무가 자라지 못할 정도로 추운 지역과 먼바다 섬 일부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발견된다.


박쥐는 각 서식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알려진 박쥐의 70% 정도는 곤충을 잡아먹는다. 따지고 보면 이런 박쥐들은 곤충에게는 저승사자이겠지만, 인간에게는 고마운 존재다. 이들이 없다면,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해충과 감염병을 옮기는 매개충 수가 엄청나게 늘어날 테니 말이다. 나머지 박쥐 대부분은 과일과 꽃꿀을 즐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씨앗을 퍼뜨리고 수분을 매개해 식물 번식을 도와 궁극적으로 자연 생태계를 풍성하게 하는 데에 한몫을 톡톡히 한다. 물론 이런 우호적 측면이 다양한 바이러스의 보유숙주로서 인류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를 줄여주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러나 박쥐의 참모습을 아는 건 이른바 감염병 시대를 살기 위한 슬기의 기본일 것이다.


박쥐는 매우 다양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박쥐에서 확인된 바이러스만 ‘과’ 수준에서 28종류에 달한다(www.mgc.ac.cn/DBatVir/). 종으로 내려가면 수백을 훌쩍 넘어간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작 박쥐는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쉽게 말해 무증상 감염인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은 해를 입지 않고 여러 바이러스를 전파하는 감염원으로 작용하는 보유숙주가 된 것이다. 그 비결이 궁금하다.


박쥐는 유일한 비행 포유류다. 중력을 이겨내고 하늘을 날려면 보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박쥐는 신진대사를 빠르게 해서 필요한 에너지를 충당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만큼 더 열이 발생해 체온이 올라간다. 사실 발열은 면역의 일종이다. 체온이 올라가면 면역반응은 가속화하고 병원체의 생존조건은 열악해진다. 일리 있는 추론이지만, 이것만으로 박쥐와 바이러스의 무탈한 공존을 설명하기는 역부족이다.



박쥐의 포용력(?)


현대 생물학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동물 개체가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어우러진 ‘전생명체(holobiont)’임을 알려준다(‘흰 소의 뒷모습에서’, 경향신문 2021년 12월24일자 14면 참조). 이렇게 되면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라는 이분법적 틀에 따라 면역을 배타적 자기방어 시스템으로 보는 전통적 관점도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생명체 화석은 36억년 전쯤에 존재했던 세균의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46억년 지구 역사를 24시간으로 환산하면, 새벽 5시쯤 처음으로 세균이 탄생했고 밤 9시까지는 미생물만의 세상이었다. 이후에 출현한 생명체는 예외 없이 다양한 미생물과 부대끼며 살아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 생명체의 면역계는 생물학적 역사 동안 다양한 미생물을 접하며 다듬어진 오랜 진화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수많은 만남 속에서 각 생명체의 면역계는 온갖 미생물이 주는 자극에 반응하면서 가까이해야 할지, 멀리해야 할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키워왔다는 얘기다. 따라서 면역은 배타와 수용이라는 양가성을 띠고 있다. 균형추가 어디로 얼마나 기울어질지는 유해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다시 말해, 면역반응의 방향과 강도는 이질성보다는 위험성에 따른다는 뜻이다.


박쥐는 면역 저울의 균형추를 수용 쪽으로 치우치게 하면서도 절묘하게 균형을 맞추는 능력을 터득한 것 같다. 실제로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속속 발견되고 있다. 우선 유전체 분석 결과 박쥐는 일부 면역 관련 유전자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다른 포유류에 비해 염증도 현저히 덜 일어난다. 염증 역시 면역반응의 일종인데, 피부가 부어올라 혈관이 확장되면 늘어난 혈류와 함께 백혈구가 모여들어 침입자를 처리한다. 싸움이 치열해지면서 염증 부위가 빨갛게 붓고 통증도 생긴다. 그런데 박쥐는 어지간하면 바이러스를 그냥 놔둔다는 것이다. 포유류 가운데 왜 유독 박쥐만 이런 포용력을 갖게 되었을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박쥐다운 장내 미생물


박쥐는 조류만큼이나 소화관 길이가 짧다. 이미 설명했다시피 비행에는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박쥐와 조류 모두 몸무게를 최대한 줄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고 여겨진다. 창자 길이가 짧을수록 섭취한 음식물이 머무는 시간도 짧아져 박쥐의 장내 환경은 다른 포유류와 사뭇 달라진다. 실제 박쥐의 장내 미생물 조성은 포유류가 아니라 조류를 빼닮았다.


소화관 내벽은 엷은 겉껍질, ‘상피’로 덮여 있다. 상피는 물질 이동을 통제한다. 이를테면 장속에 있는 영양소는 상피세포를 거쳐 혈관으로 흡수된다. ‘세포횡단수송’이라고 부르는 이 과정을 통해 포유류 대부분이 장에서 소화된 양분을 흡수한다. 하지만 박쥐는 세포횡단수송 못지않게 상피세포 사이 틈으로 물질을 이동하는 ‘측세포수송’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쉽게 말해 측세포수송은 체로 거르는 방식이다. 크기만 맞으면 상대적으로 빠르고 쉽게 더 많은 물질이 통과한다.


소화관 길이가 짧아 영양분 흡수 시간이 부족한 박쥐에게 측세포수송은 제법 요긴할 터이다.


보통 세상 이치가 그렇듯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측세포수송 사용이 늘어날수록 각종 외부 이물질에 대한 노출도 그만큼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바이러스를 비롯한 다양한 미생물과 만남이 잦아지고 길어지면서 박쥐 면역의 균형추가 점점 수용 쪽으로 쏠리게 된 것 같다. 역설적으로 위기가 혁신의 토대를 놓은 셈이다.


인류 역사를 들여다보면 감염병 유행은 유사 이래 끊이지 않고 불쑥거렸다. 문제는 21세기에 접어들어 감염성 미생물의 나댐이 빈번해지고 그 주체도 세균에서 바이러스로 바뀌고 있는 경향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의 한 귀퉁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이런저런 바이러스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번갈아 몰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한쪽이 그대로인데 상황이 급변했다면, 상대인 인간 쪽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게 아닐까? 어쩌면 박쥐는 각성을 촉구하는 경고장을 날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 <더 배트맨> 속 주인공의 낮은 읊조림이 예사롭지 않은 울림을 준다. “공포는 도구다. 하늘을 비추는 저 빛은 단순한 부름이 아니다. 경고다.” 


출처 :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220414221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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