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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25) 21세기 감염병의 주인공 된 바이러스…인간이 초래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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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1-26 13:35:31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언제부턴가 11월11일을 막대 모양 과자를 건네며 정을 나누는 날로 여기는 이들이 적잖아졌다. 사실 이날은 엄숙하게 기억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 이유가 있다. 인류 최초의 대량살상전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니 말이다. 1914년 7월28일 울린 첫 총성이 1918년에 멈추기까지 4년여에 걸쳐 치른 전쟁에서 군 전사자 수만 무려 900여만명에 달했고, 부상 장병 수는 2300만명을 넘었다. 그 가운데는 총칼을 든 적군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적들로 인한 사상자도 상당했다. 

미 군함에 올라탄 독감 바이러스 

미 펀스턴 기지서 시작된 질병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 참전하며
병원성 미생물 유럽으로 건너가
네 차례 ‘대유행’ 5000만명 숨져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미국은 외형상 중립을 표방하며 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1915년 5월7일, ‘루시타니아(Lousitania)호 사건’이 발생했다. 독일의 잠수함 공격으로 비운의 영국 여객선이 격침되어 승객과 선원 1957명 가운데 무려 1198명이 희생된 참사였다. 미국인 사망자는 128명이었다. 미국 내에서 참전 여론이 불붙기 시작했다. 그런데 1917년 1월, 독일이 여기에 기름을 붓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독일 외교부 장관 아르투어 치머만(Arthur Zimmermann)은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에게 암호문을 타전했다. 멕시코가 미국을 공격한다면 미국에 빼앗긴 모든 영토를 되찾게 해주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미국이 중립을 포기하고 연합군으로 참전할 경우, 멕시코를 동맹으로 끌어들여 미국을 견제할 심산이었다. 행운의 여신은 미국 편이었다. 영국군이 이 암호문을 가로채 해독해서 미국 정부에 알린 것이다. 마침내 1917년 4월6일, 미국은 연합국 일원으로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파병을 위해 징병제를 도입했다. 

1918년 3월4일, 미국 캔자스주 소재 펀스턴 기지(Camp Funston)에서 취사병으로 복무 중이던 한 병사가 기침과 두통, 고열로 몸져누웠다. 소위 ‘스페인독감’ 공식 1호 환자다. 3주 만에 수천명의 훈련병이 독감에 걸려 1000명 넘게 입원했다. 이후 여름까지 같은 기지에서 다섯 차례 더 독감이 발생했는데, 공교롭게도 대규모 신병 입소와 시기가 겹쳤다. 펀스턴 기지에서 시작된 독감은 이내 다른 미군 기지로 전파되었고, 이윽고 군함을 타고 대서양을 건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병영과 참호에서 스페인독감으로 사망한 군인만도 10만명이 넘었다. 이것이 연합군이 승기를 잡는 계기가 되었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하지만 미생물학 관점에서 냉정하게 보면,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 감염병이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판단은 승자의 결과론적 해석으로 보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스페인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독감 피해를 봤다는 사실 말고는 스페인이 이 악명 높은 감염병 이름에 엮일 이유가 없다. 스페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론 검열이 심하지 않았다. 이 덕분에 스페인 신문은 독감 관련 기사를 마음껏 실을 수 있었는데, 얄궂게도 이로 인해 그 당시 ‘독감’ 하면 스페인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스페인독감 대신 ‘1918년 인플루엔자’를 사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미 군함에 올라타 유럽으로 건너간 독감 바이러스는 이내 ‘팬데믹(pandemic)’으로 번져 두 해에 걸쳐 네 차례 대유행을 일으켰다. 1920년까지 5억명 이상을 감염하고 5000만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갔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참혹한 피해 상황만이 알려졌을 뿐 정작 그 병을 일으킨 병원체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거의 없었다. 과학자들이 무능하거나 태만해서가 아니었다. 아직 ‘바이러스’라는 이름조차 정립되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발견사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한 의구심의 발단은 18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에 독일 과학자 아돌프 마이어(Adolf Mayer)가 병든 담뱃잎에서 추출한 수액을 건강한 잎에 문지르면 병이 옮겨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로부터 9년이 지난 1892년 러시아 생물학자 드미트리 이바노프스키(Dmitri Ivanovski)는 병든 담뱃잎에서 짜낸 수액을 세균을 거를 수 있는 필터로 여과하더라도 여전히 병을 일으키는 인자가 남아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몇 년 후 네덜란드 출신 마르티누스 베이제린크(Martinus Beijerinck)는 여과된 수액 속 병원성 인자가 증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이것이 독소에 의한 감염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베이제린크는 증식 능력이 있는 이 병원성 인자가 세균보다 훨씬 더 작고 단순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이 때문에 그는 훗날 바이러스라는 새로운 존재에 대한 개념을 최초로 소개한 과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당시 현미경으로는 이를 볼 수 없었던 까닭에 이런 병원성 인자를 ‘감염성 액체(contagium vivum fluidum)’라고 기술했다. 마침내 1935년 미국의 화학자 웬들 스탠리(Wendell Stanley)가 그 무렵 발명된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이 병원성 인자의 실체를 확인했다. 인류가 그 정체를 규명한 1호 바이러스,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의 크기 이해를 돕기 위해 평균 지름이 0.1㎝ 정도인 인간 세포가 야구 경기장만 하다면, 대장균은 투수 마운드 크기이고 바이러스는 야구공 정도로 가늠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그 구조 또한 매우 단순해서, 단백질 껍데기 속에 유전물질로 DNA와 RNA 가운데 한 가지만 들어 있다. 대개 동물바이러스는 추가로 지질막, 쉽게 말해 기름막에 둘러싸여 있는데, 이 외막은 보통 감염시켰던 숙주의 세포막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바이러스는 세포의 형태를 갖추지 못해 때때로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경계에 걸쳐 있다고 여기기도 하지만, 생물학에서는 통상 이를 비세포성 미생물로 간주한다. 

바이러스 탐정 

1957년·1968년·2009년 독감은
1918 인플루엔자의 후손들 소행
애당초 1차대전이 안 일어났다면
팬데믹 역사 달라지지 않았을까

1951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학교 대학원생 요한 훌틴(Johan Hultin)이 역사 속에 묻힌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찾아 나섰다. 이 25세 청년이 향한 곳은 알래스카에 소재한 작은 바다 마을 브레비그 미션(Brevig Mission)이었다. 오늘날에도 주민이 400명 정도밖에 안 되는 이 마을에 1918년에는 약 150명이 살았다. 대부분 이누이트 원주민이었는데, 1918년 인플루엔자로 성인 거주자의 대부분인 72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방정부는 희생자들을 마을 근처 언덕에 함께 매장하고 그 위에 하얀 십자가를 세웠다. 

훌틴은 그 영구동토 공동묘지에서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영하의 기온에서 시신이 냉동 상태로 보관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1951년 마을 어른들의 허락을 받아 묘를 발굴하여, 시신에서 폐 조직 시료를 채취했다. 실험실로 돌아온 훌틴은 달걀에 시료를 주입해 바이러스 배양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97년, 훌틴에게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미군 병리학연구소 연구진이 ‘스페인독감 바이러스 유전자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저명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이 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1918년 9월20일 미군 병사가 독감과 폐렴 진단을 받고 입원한 지 엿새 만에 사망했는데, 당시 군 의료진이 그의 폐 조직 일부를 연구 목적으로 보존했다. 그리고 79년 후, 후배 과학자가 이 시료에서 문제의 바이러스 유전물질을 추출해 특성을 파악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 ‘A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판명되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크게 네 종류(A, B, C, D)로 나눈다. 이 가운데 A형이 감염성과 병원성 면에서 선두 주자다. A형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는 야생 철새로 알려져 있으며, 변이를 통해 조류에서 포유류로 넘어온 것으로 추정한다. A형과 함께 B형 바이러스가 계절 독감을 주로 일으킨다. C형과 D형은 보통 소와 돼지, 개 등을 감염시키며 A형과 B형보다 병원성과 발생 빈도가 훨씬 낮다. 그 논문을 읽은 훌틴은 ‘2차 동토 공동묘지 발굴 계획’을 세웠다. 먼저 논문 저자에게 연락해 자기가 알래스카에서 1918년 인플루엔자 희생자의 폐 조직 시료를 가져오면 함께 연구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대답은 ‘예스(yes)’였다. 일주일 후 훌틴은 탐험을 떠났다. 고희를 넘긴 노학자는 다시 한번 발굴 허가를 받고, 다시 시신의 폐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미군 병리학연구소로 보냈다. 그리고 열흘 뒤, 1918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맞다는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이로써 훌틴은 시작한 지 46년 만에 성공적으로 연구를 마무리했다. 이후로 훌틴의 이름 앞에는 ‘과학계의 인디아나 존스’라든가 ‘바이러스 탐정’ 같은 수식어가 따라다니고 있다. 

1918년 인플루엔자는 물러갔지만, 그 후손들이 지난 세기 동안 전 세계적으로 계절 독감 대부분을 일으켰다. 1957년 아시아독감과 1968년 홍콩독감, 그리고 2009년 조류인플루엔자(AI) 팬데믹 모두 이들 소행이었다. 역사에서 ‘만약에’는 무의미하겠지만 ‘반사실적 사고(counterfactual thinking)’를 1918년 인플루엔자 이야기에 적용하면 자칫 간과할 수 있는 사실이 시나브로 드러난다. 미국이 참전하지 않았다면, 앞서 ‘치머만 전보 사건’이 없었다면, 아니 애당초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1918년 인플루엔자 범유행이 있었을지 생각해보자. 아마도 아니었을 것 같다. 그랬다면 1957년과 1968년, 2009년 독감 범유행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고, 계절 독감의 양상도 오늘날 경험하는 것과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류 역사를 들여다보면 감염병 유행은 유사 이래 끊이지 않고 불쑥거렸다. 문제는 21세기에 접어들어 병원성 미생물의 나댐이 빈번해지고, 그 주체도 세균에서 바이러스로 바뀌고 있는 경향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아주 오래전부터 자연의 한 귀퉁이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이런저런 바이러스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번갈아 몰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한쪽이 그대로인데 상황이 급변했다면, 상대인 인간 쪽에 무슨 변화가 생긴 게 아닐까? 지구상에 일어나는 수많은 변화가 인간의 행동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생각이 단순한 오해는 아닐 것 같다. 

▶김응빈 교수

21세기 감염병의 주인공 된 바이러스…인간이 초래한 건 아닐까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2111252052002#csidxb51d66e7d32a54c9d7790b7d49311f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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