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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26)] 미생물이 소를 키우듯, ‘공생’은 지구 생명체의 과거이자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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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24 13:40:49

흰 소의 뒷모습에서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어느덧 또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세밑이다. 이맘때 아쉬움이 언젠들 없었으랴마는, 코로나19로 지친 마음에 떠나는 흰 소의 뒷모습은 아쉽다 못해 야속하다. 과학적 근거는 접어두고, 신성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기에 혹시나 걸었던 기대와 소망이 사뭇 달랐던 탓인가보다. 어떻게든 씁쓸함을 달래보려는데 뜬금없이 꽤 오래전부터 한 개그맨이 에피소드 중에 불쑥 던지곤 하는 말이 떠오른다. “소는 누가 키울 거야?” 맥락 없어 보이는 질문이 상황과 묘하게 맞아떨어져 종종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설정이라서 그런지 아무도 그 답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묻지 않은 정답을 제삼자가 공개한다. 

소는 바로 다양한 미생물이 힘을 합쳐 키운다. 말하자면 미생물이 소를 먹여 살린다. 여물은 농부가 쑤는데 무슨 소리인가 하겠지만, 그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다. 농부가 제아무리 정성껏 여물을 주어도 소는 그걸 소화할 능력이 정작 없기 때문이다. 여물, 곧 마른풀의 주성분은 섬유소이다. 그런데 소는 섬유소를 소화하지 못한다. 소만 그런 게 아니라 지구상에서 섬유소를 소화하는 동물은 아직 발견된 바 없다. 이들 모두 아무리 풀을 뜯어 먹어봐야 별 소용이 없다. 미생물이 함께하지 않으면 말이다. 

묘하게 다른 탄수화물, 녹말과 섬유소 

녹말(왼쪽)과 섬유소(오른쪽)의 구조. 출처 <핵심 생명과학>(바이오사이언스출판)

녹말(왼쪽)과 섬유소(오른쪽)의 구조. 출처 <핵심 생명과학>(바이오사이언스출판)

포도당 간 결합 끊어야 섬유소 소화
소는 그런 힘 가진 효소 없는 대신
혹위 안 세균들이 섬유소를 분해
그 세균을 반추위의 원생동물이 먹고
원생동물 자체는 소에게 영양분 돼

탄수화물은 이름 그대로 탄소와 수소, 산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이고 이들의 비율은 거의 1 대 2 대 1이다. 예컨대, 혈당의 주성분이자 가장 중요한 세포 에너지원인 포도당은 6개 탄소로 연결된 뼈대에 수소 12개와 산소 6개가 붙은 구조이다. 단당류인 포도당이 줄줄이 여러 개 이어지면 다당류인 녹말 또는 섬유소가 된다. 그런데 그 연결 과정에서 언뜻 사소해 보이는 차이 하나가 지구에 사는 생명체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포도당은 마치 우리가 발목을 잡고 몸을 둥글게 말 수 있듯이 자체적으로 연결되어 고리 모양을 취할 수 있다. 그런데 고리 구조를 이룰 때, 1번 탄소에 붙은 수산기(-OH)의 위치가 장차 만들어질 다당류의 종류를 결정한다. 이 수산기가 고리 평면을 기준으로 아래에 있으면 알파(α), 위에 있으면 베타(β) 포도당이라고 부른다. 녹말을 이루는 포도당은 모두 알파 형태이다. 반면, 섬유소는 베타 포도당으로만 되어 있다. 이 때문에 녹말에서는 모든 포도당이 같은 방향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섬유소의 포도당은 인접한 포도당에 대해 서로 뒤집힌 형태를 취하게 된다(그림). 

인간을 포함하여 동물은 녹말을 섭취하여 주요 에너지원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동물에게 섬유소를 이루는 포도당은 그림의 떡이다. 섬유소를 소화하려면 베타 포도당을 잇는 결합을 끊어야 하는데, 이들은 이런 효소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게 다이어트 열풍을 타고 잘 알려진 식이섬유소의 인기 비결이다. 소화되지 않으니 많이 먹어도 칼로리 흡수가 없어 살찔 걱정이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섬유소가 영양소로서 쓸모가 없다는 건 아니다. 

음식을 통해 섭취된 섬유소는 소화관 벽을 자극하여 점액 분비를 촉진한다. 이 덕분에 음식물이 소화관을 부드럽게 통과할 수 있다. 특히 섬유소는 유익한 장내 미생물에게 좋은 먹이가 되어 결과적으로 우리 건강에 큰 도움을 준다. 사실 우리는 먹은 음식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장내 미생물이 없다면, 음식물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해 영양분을 온전히 흡수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뿐만 아니라 장내 미생물은 비타민과 항염증 물질을 비롯하여 인체가 만들지 못하는 유용한 화합물도 여럿 만들어준다. 

반추 

‘돌이킬 반(反)’에 풀이 감싼 꾸러미 모양을 본뜬 ‘꼴 추(芻)’가 붙어 ‘반추’가 된다. 글자 그대로 반추는 한번 삼킨 풀(먹이)을 다시 게워내어 씹음, 곧 되새김을 뜻한다. 그리고 어떤 일을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한다는 의미도 있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양곱창구이’ 식당이 곧잘 눈에 띈다. 양곱창이란, 소의 위를 고기로 이르는 ‘양’과 소의 작은창자(소장)인 ‘곱창’을 붙인 말이다. 소 같은 반추동물은 보통 위가 4개이다. 순서대로 ‘혹위’, ‘벌집위’, ‘겹주름위’, ‘주름위’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혹위와 벌집위가 바로 양구이 재료이고, 보통 날로 먹는 ‘처녑’이 겹주름위이다. 네 번째 주름위는 주로 ‘막창구이’로 메뉴판에 올라 있다. 

혹위는 먹은 풀을 우선 모아두는 공간답게 크기가 아주 크다. 황소의 혹위는 200ℓ에 달한다. 소는 혹위에 들어 있는 내용물을 게워내서 수십 번 씹은 후 다시 삼킨다. 이렇게 되새김질한 풀은 벌집위로 들어가 뭉쳐진다. 소는 이것을 또다시 되새김질하여 겹주름위를 거쳐 주름위로 보내 소화한다. 엄밀히 말하면 마지막 위인 주름위가 진짜이고, 앞의 3개는 식도의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소는 온종일 40~50분 간격으로 되새김질을 반복한다. 혹위 속에서는 많은 미생물, 특히 세균들이 섬유소를 분해한다. 소는 세균이 섬유소를 먹고 내놓은 배설물, 곧 발효 산물을 흡수하여 영양분으로 사용한다. 반추위에는 ‘원생동물’이라는 또 다른 부류의 미생물이 살고 있다. 원생동물은 가장 원시적인 단세포동물을 총칭한다. 아메바와 짚신벌레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반추위 속 원생동물은 주로 세균을 잡아먹고 산다. 이 덕분에 반추위에 사는 세균 수가 적정 수준으로 유지된다. 나아가 이들 원생동물은 주름위에서 소화되어 소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 그래서 소가 풀만 먹고도 엄청나게 근육(살)을 찌울 수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미생물이 아니라면 소는 굶어 죽고 만다. 

동물과 미생물이 서로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관계가 반추동물처럼 큰 동물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이와 유사한 과정이 훨씬 더 작은 숙주 안에서도 일어난다. 나무를 갉아 먹는 흰개미의 삶도 창자 속 미생물에 전적으로 의지한다. 흰개미는 지구에서 그 수가 가장 많은 곤충 가운데 하나로 목조 문화재 훼손의 주범이기도 하다. 흰개미가 해충으로 지목되는 주된 이유다. 그러나 좀 더 큰 차원에서 바라보면 흰개미도 지구 생태계의 어엿한 구성원으로서 나름 역할을 한다. 

흰개미도 창자 속 미생물에 의지
목재 먹어치워 해충이라 불리지만
내보내는 탄소로 식물이 ‘광합성’
생명체는 혼자인 적이 없었고
모든 삶 자체가 공생의 시너지 효과

흰개미는 식탐 때문에, 다시 말해 장내 미생물의 활동으로 엄청난 양의 목재를 먹어치운다. 이렇게 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양분을 얻어 숨 쉬고 살면서 끊임없이 이산화탄소를 내보낸다. 숲속 식물에 광합성 원료를 제공함으로써 자연계의 탄소순환에 톡톡히 이바지한다는 말이다. 앞서 소개한 ‘가위개미의 곰팡이 농장’과 ‘우드와이드웹’(‘곰팡이에 숨겨진 이야기’, 경향신문 2020년 9월18일자 14면 참조)에 이어 반추동물과 흰개미의 경우처럼, 동식물이 미생물과 의기투합한 것은 지구 생태계에 큰 축복이다. 이런 호혜적 협력 관계, ‘상리공생’을 통해 자연 전반에 걸쳐 영양분의 순환과 재사용이 매우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공생의 산물, 개체 

전통적으로 생물학에서는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기능을 갖춘 하나의 생명체를 개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기능을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생물학적 개체를 다르게 정의할 수 있다. 우선 ‘생리학적 관점’에 따르면 개체란 전체의 선(善)을 위해 협력하는 기관들로 구성된 생명체이다. 호흡기관과 소화기관, 순환기관 따위가 조화롭게 작동하여 인체를 이루듯 말이다. 두 번째로 ‘유전자적 관점’이 있다. 최근 분자생물학의 발전을 통해 가장 영향력이 커진 개념인데, 여기에 따르면 개체란 유전적으로 같은 세포로 구성된 생명체이다. 마지막으로 ‘면역학적 관점’에서는 면역계가 개체를 결정짓는 핵심이다. 면역계가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를 구분하므로 이때 개체란 비자기를 배제하고 자기를 인식하는 특정 면역계라고 말할 수 있다. 

1991년, 미국 출신 생물학자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1938~2011)가 생물 진화에서 공생의 중요성을 강조한 자신의 저서에서 ‘전생명체(holobiont)’라는 새로운 개체 개념을 제시했다. 전체를 뜻하는 ‘holo’와 생명체를 뜻하는 ‘biont’가 합쳐진 이 용어는 생물학적 개체를 규정할 때 눈에 보이는 전통적 개체와 함께 거기에 공생하는 미생물을 함께 생각해야 함을 의미한다. 

현대 생물학은 동물은 말할 것도 없고 식물도 눈에 보이는 실체가 개체가 아님을 보여준다. 솔직히, 겉으로 보이는 개체가 주체인지 여부도 알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생명체는 혼자가 아니다. 혼자인 적이 없었다. 지구에 사는 모든 삶 자체가 공생이 낳은 시너지 효과이기 때문이다. 진화의 장구한 시간을 고려하면, 개체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개체화 과정의 임시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개체화란, 타자들이 만나 공생적 개체를 이루는 사건, 곧 공생의 산물인 셈이다. 그렇다면 공생은 개체들의 오래된 미래가 아닐까? 지금의 개체를 만들어준 머나먼 과거이자, 끊임없이 새로운 결합 관계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 개체들의 미래 말이다. 

▶김응빈 교수

미생물이 소를 키우듯, ‘공생’은 지구 생명체의 과거이자 미래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2112232117005#csidxf6f211050cf59b2b8261e2d4148fe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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