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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 (23) 헬리코박터를 들이켜 ‘맹신’을 깨버린 학자…의과학은 그렇게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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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01 15:07:59

 

고정관념과 미생물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든가 ‘Seeing is believing’과 같은 동서양 속담은 미생물학에 꼭 들어맞는 말이다. 현미경이 발명되고 나서야 비로소 미생물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후 직간접적으로 이 작은 것을 볼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에 대한 이해가 나날이 깊어져 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가 고정관념이었다. 

나쁜 공기, 미아즈마 

‘병 원인은 나쁜 공기’ 2000년간 믿음
의사들 시신 다루며 손 안 씻고 진료
19세기까지도 서양에선 비일비재

19세기에 이르기까지도 서양에서 질병은 개인이 저지른 죄악과 악행의 대가로 받는 천벌이라는 고정관념 속에 마을에 전염병이 돌면 시궁창에서 악취 형태로 나온 악마의 소행이라고 믿기 일쑤였다. 상당수 의사도 사체나 배설물, 쓰레기 따위가 썩을 때 나오는 ‘나쁜 공기’, ‘미아즈마(miasma)’가 감염병 원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1840년대 헝가리 출신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Ignaz Semmelweis)가 의사들이 손을 제대로 씻지 않고 출산을 돕기 때문에 산모가 감염에 더 취약해진다는 지적을 하고 나섰다. 

지금으로서는 경악할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시신을 다룬 후에도 손을 씻지 않고 그대로 진료에 참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동료 의사들은 제멜바이스가 말하는 불편한 진실을 귀담아듣기는커녕 조롱과 비난을 쏟아부었다. 결국, 그는 근무하던 병원에서 쫓겨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에 가서도 걱정 어린 충고를 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건 차가운 따돌림뿐이었다. 

수술실 환경은 르네상스 시대나 19세기나 기본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수술실의 침대보와 수술복은 제대로 빨지 않고 사용했다. 피 묻은 가운이 오히려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질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영국의 저명한 의사 존 에르흐센(John E Erichsen)조차도 상처 자체에서 나오는 미아즈마가 공기 중에 축적되어 감염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그는 감염된 상처가 있는 환자가 병실의 병상 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 공기가 미아즈마로 포화한다는 추론까지 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걸출한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가 발효는 효모에 의한 생물학적 반응임을 입증하면서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아 막연히 신비스럽게 여겼던 많은 현상을 미생물과 연관지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소식은 바다 건너 영국에도 전해져 젊은 의사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에게 울림을 주었다. 그는 발효를 일으키는 것과 같은 과정이 상처에서도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해 미생물이 상처를 통해 체내로 들어와 감염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간파한 것이다. 리스터는 손을 씻는 수준을 넘어 훨씬 적극적으로 예방책을 모색하다가, 그 시절 하수구 악취 제거에 사용하던 석탄산(페놀)을 발견했다. 냄새를 없앤다면 미생물도 파괴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는 1865년부터 수술 도구와 붕대에 석탄산 용액을 분무한 다음에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런 소독 방법을 1년쯤 사용한 리스터는 임상 데이터를 모아 1867년 논문으로 발표했다. 영국 의료계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뜻밖에도 리스터 소독법의 도입과 확산에 이바지한 건 독일(프로이센)이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중 부상자를 치료하던 몇몇 의사가 이 방법을 사용하면 생존율이 훨씬 올라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종전 후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리스터 소독법을 사용하는 유럽 의사들이 빠르게 늘어갔다. 영국은 맨 마지막 사용국이었다. 이처럼 2000년 넘게 다져진 미아즈마에 대한 고정관념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탄저병과 미아즈마 퇴출 

효모 발견 후 ‘미생물이 발병’ 간파
전쟁 중 ‘소독법’ 빛 보자 인식 변화
탄저병 연구로 ‘나쁜 공기=병’ 퇴출

제멜바이스와 파스퇴르에 이어 리스터의 연구 성과로 미생물과 감염병의 연관성은 확실해 보였다. 이제 관건은 인과관계 규명이었다. 1866년 의대를 졸업한 독일 의사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는 1872년 작은 도시 뵐슈타인(Wöllstein)에 정착했다. 그 무렵 뵐슈타인 지역에는 탄저병이 만연해 있었다. 4년에 걸쳐 인명피해만 528명이었고, 가축 5만6000마리가 죽어 나갔다. 탄저병은 주로 초식동물에서 발생하지만, 사람에게도 전염되는 ‘인수공통감염병’이다. 

탄저균(학명 바실루스 안트라시스·Bacillus anthracis)에 감염되면 잠복기가 보통 일주일이 채 안 되지만 드물게 두 달 정도 걸리는 사례도 있다. 감염된 동물을 다루는 과정에서 피부나 호흡기를 통해 병에 걸리거나 감염된 동물 고기를 익히지 않고 날로 먹어서 걸린다. 이에 따라 탄저병은 감염 경로별로 피부 탄저병, 호흡기 탄저병, 위장관 탄저병으로 구분한다. 탄저균이 피부에 감염되면 가려우면서 부스럼과 물집 따위가 생긴다. 며칠 지나면 감염 부위에 고름이 생기면서 검게 변한다. 석탄을 뜻하는 그리스어 ‘안스라키스(anthrakis)’에서 유래한 ‘안스락스(anthrax·탄저병)’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코흐는 쥐를 비롯한 실험동물을 동원해 단계적으로 탄저병 원인 규명에 착수했다. 우선 탄저병에 걸린 동물의 피를 현미경으로 관찰해 막대 모양 입자(탄저균)가 건강한 동물의 피에는 없고 병에 걸린 동물 것에만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특정 입자의 존재는 그 병으로 인한 결과일 수도 있으므로, 그것이 탄저병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코흐의 비범함은 이제부터 빛을 발한다. 그는 탄저균을 생체 밖에서 키울 수 있는 배양 기술을 개발했다(‘우무와 퓨어 컬처’, 경향신문 7월9일자 14면 참조). 그리고 배양한 세균을 건강한 실험동물에 다시 주입했다. 그러자 그 동물 역시 탄저병으로 죽었고, 피에서 주입한 것과 똑같은 막대균(간균)이 나왔다. 이렇게 해서 감염병과 미생물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었고, 마침내 미아즈마가 퇴출당했다. 

위 속에는 미생물이 살 수 없다는 고정관념 

과학자가 기존 지식에 지나친 신념
고착되면 ‘믿는 것을 아는 것’ 착각
‘앎의 범위’ 넒히려면 열린 자세 필요

위는 뿅망치 같은 주름과 유연한 근육 벽 덕분에 잘 늘어난다. 포식 후 볼록 나오는 윗배가 생생한 증거다. 또한 위는 연속적으로 근육을 수축·이완시켜 들어온 음식물과 위액을 잘 섞어준다. 위액에는 염산이 들어 있어 철사를 녹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산성을 띤다. 따라서 음식물과 함께 들어온 미생물은 대부분 죽고 만다. 인간의 측면에서 보면 일종의 방어 작용이다. 그런데 위벽은 어떻게 강한 산성에도 멀쩡할 수 있을까? 

위벽 세포는 뮤신이라고 하는 점액을 분비하여 염산으로부터 위벽을 보호한다. 과도한 음주와 흡연, 스트레스 따위로 위산이 과다 분비되면 위점막이 손상될 수 있다. 이게 바로 흔히 말하는 속쓰림의 주요 원인이다. 심하면 위염과 위궤양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절제하는 생활 습관이 건강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런 위점막의 보호 기능을 이용하여 위 안에 살면서 행패를 부리는 불한당이 있다. 바로 악명 높은 세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roli)’이다. 속(genus)명 ‘Helicobacter’는 그 모양이 ‘나선형(helix)’임을 의미하고 종(species)명 ‘pyroli’는 이 세균이 위와 십이지장의 경계 부분인 ‘유문(pylorus)’에 주로 서식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9년, 호주 출신 병리학자 로빈 워런(Robin Warren)이 위에 사는 세균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자기 눈을 의심했다. 3년 뒤 역시 호주 의사 배리 마셜(Barry Marshall)이 이 세균을 분리하여 순수배양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난감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하려고 논문을 투고했더니, 혹평과 함께 퇴짜를 맞았다. 염산이 소용돌이치는 위에서는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과학자 대부분이 이들의 연구 성과를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다. 

위 속에는 미생물이 절대로 살 수 없다는 철옹성 같은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마셜은 놀랍고도 무모해 보이는 실험을 감행했다. 100여년 전 코흐가 감염병의 인과관계를 밝히기 위해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했던 실험을 자기 자신에게 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배양액을 한 컵 쭉 들이켰다. 며칠 후 마셜에게 위염 증세가 나타났다. 이내 내시경 검사를 통해 위염 발생 부위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자라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고 나서 항생제를 복용하여 이들을 제거하자 위염도 사라졌다. 과음과 스트레스 같은 환경 요인과는 별도로 세균 감염도 위궤양 원인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마셜은 워런과 함께 20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런데 도대체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어떻게 위에서 살 수 있을까? 그 비법은 이렇다. 우선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끝부분이 도드라져 곤봉처럼 생긴 편모를 휘저으며 끈적한 위 점액 속을 헤엄쳐 점막층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위액 파도를 피해 방파제 뒤에 숨는 격이다. 그런 다음 효소를 분비해 음식물에서 나오는 미량의 요소를 분해하여 암모니아를 만들어낸다. 암모니아는 염기성이라서 염산을 화학적으로 중화하여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글머리에서 언급한 ‘Seeing is believing’에서 ‘봄(seeing)’은 곧 ‘앎(knowing)’이다. 흔히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안다고 한다. 문제는 자신의 앎에 대한 맹신이다. 따지고 보면, 과학은 ‘기지(旣知)’를 통해 ‘미지(未知)’를 포섭함으로써 앎의 범위를 계속 확장하면서 발전한다. 그러므로 과학자야말로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기존 과학적 지식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망각하면 믿는 것을 아는 것으로 착각하는 우를 범해 자칫 스스로 잘못된 고정관념에 빠질 수 있다. 이건, 사실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김응빈 교수

헬리코박터를 들이켜 ‘맹신’을 깨버린 학자…의과학은 그렇게 발전했다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 경향신문, 과학/환경 https://www.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2109302025002#csidx7d1e04c07304e608192d3c28c3f0b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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