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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20)우뭇가사리가 ‘세균 배양’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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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09 10:55:33

 

ㆍ우무와 ‘퓨어 컬처’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우무 가루를 끓인 후 식혔더니
거의 100도까지 고체 상태 유지
미생물이 먹어치우지 못해
배양 ‘고체배지’로 안성맞춤
 

반복되는 일상 속 어느 날 뜻밖의 선물이 도착했다. 제주에 사는 지인이 보내준 천연 생미역이었다. 즉시 휴대전화를 들어 반가움과 고마움을 전했더니, 이번에는 잔잔한 울림으로 화답했다. “요 며칠 바다가 성을 낸 게 미안했는지 파도가 집 앞 바닷가로 미역을 배달했다네. 늘 내주는 바다가 고맙지. 그걸 함께 나누고 싶어서….” 바다와 사람의 베풂을 통해 전해지는 정겨움이 마음을 적셨다. 그날 저녁 밥상은 당연히 미역이 주인공이었고, 급기야 미역 강의(?)도 이어졌다. 

미역은 ‘해조(海藻)’, 순우리말로 ‘바닷말’의 일종이다. 한자 ‘조(藻)’는 획수가 많아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나무 위에서 입을 벌리고 지저귀는(울 소·) 새들이 물(삼수변·)에 떠 있는 풀(초두머리·)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나름 쉽고 재밌게 익힐 수 있다. 해조를 ‘해초(海草)’와 같은 식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둘은 분류학적으로 아주 다른 생물이다. 해초는 엄연한 식물이지만, 해조는 그렇지 않다. 

해조류의 정체는? 

전통적으로 원시(하등) 식물로 간주하는 해조류는 뿌리와 줄기, 잎이 체계적으로 분화하지 않는다. 일례로 온전한 생미역을 살펴보자. 잎사귀처럼 흐느적거리는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엽상체’라고 부르는 이 부위는 광합성 세포들이 들러붙어 이루는 단순한 구조이다. 말하자면, 엽상체에는 양분이나 물을 운반하는 관다발이 없다. 엽상체는 ‘줄기부’에 붙어 있다. 줄기부는 목질화되지 않아 식물의 줄기와 같은 지지 작용은 못한다. 미역을 위로 서게 하는 건 바로 부력이다. 줄기부 맨 끝에 흡사 뿌리 같은 부분은 미역을 바위에 고정하는 ‘부착기’이다. 

쉽게 말해, 해조류는 혼자서도 살 수 있는 광합성 세포가 뭉쳐서 온몸으로 빛을 받고 필요한 물질을 흡수하며 사는 셈이다. 그래서 해조류를 ‘조류(algae)’라는 미생물 무리에 포함해 미생물학에서 다루기도 한다. 크기보다는 각자도생 가능한 개체(세포)가 모여 덩치가 커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서 말이다. 

조류는 일단 크기에 따라 대형조류와 미세조류로 나눈다. 해조류가 전자에 속하고, 후자는 ‘식물성 플랑크톤’이라고도 부른다. 조류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소비하고 지구에 필요한 산소의 절반 정도를 공급한다. 그뿐만 아니라 대형조류, 즉 해조류가 모여 사는 바다숲은 물고기가 알을 낳고 알에서 갓 깨어난 어린 물고기가 자라나는 보금자리이다. 그리고 여기서 미세조류는 물고기 먹이가 되어준다. 그러므로 조류는 바다 생명의 파수꾼이라 하겠다. 하지만 특정 미세조류가 짧은 시간에 급증하면 ‘녹조’나 ‘적조’ 같은 골치 아픈 문제도 생긴다. 

해조류 색깔의 의미 

산이 높아지면서 식물상이 변하듯이 바다도 깊어지면서 해조류가 달라진다. 바닷가 수심이 얕은 곳에는 파래와 매생이 같은 ‘녹조류’가 살고, 이어서 미역과 다시마, 모자반 같은 ‘갈조류’가 등장한다. 가장 깊은 곳은 김과 우뭇가사리를 비롯한 ‘홍조류’ 차지이다. 이런 서식지 구역이 생겨난 이유는 바닷물 깊이에 따라 들어오는 빛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빛깔 무지개를 그려낸다. 여기서 돌발 퀴즈! 빨주노초파남보 가운데 어느 색깔에 가장 에너지가 많을까? 보통 우리의 직관은 빨강이 뜨거움이고 파랑은 차가움이라고 느끼게 하므로 빨강이라고 답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타오르는 불꽃에서 안쪽 파란 부분이 붉은 바깥쪽보다 더 뜨겁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에너지가 많은 빛깔이 물속 더 깊이 도달하기 때문에 깊은 곳에 살수록 광합성에 사용할 수 있는 빛은 푸른색 계열이다. 

광합성에는 모든 빛깔이 사용되는 게 아니다.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는 자신의 색과 보색 관계에 있는 색의 빛을 주로 흡수해 에너지원으로 쓴다. 보색이란, 색상표에서 서로 마주 보는 색으로 섞었을 때 하얀색이나 검은색처럼 무채색이 되는 두 가지 색깔을 말한다. 예컨대, 육상식물은 주로 적색광을 흡수하고 녹색광은 반사한다. 그래서 식물이 초록색으로 보인다. 만약 식물이 모든 빛깔을 흡수한다면 녹색이 아니라 검은색으로 보일 것이다. 가장 얕은 곳에 사는 녹조류도 식물과 마찬가지이다. 갈조류와 홍조류는 각각 황색광과 청색광을 흡수한다. 자기들이 사는 곳을 비춰주는 빛에 적응한 것이다. 

해조류는 그 자체로 건강식품일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유용한 물질을 제공한다. 미역 같은 갈조류의 세포벽에서 추출한 ‘알긴(algin)’은 식품 첨가제로 사용되어 잼이나 마요네즈, 아이스크림 같은 식품에 점도를 증가시켜 부드러운 식감을 더해준다. 또한 보습 효과도 뛰어나 피부관리 제품 성분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한편 홍조류에 속하는 우뭇가사리는 또 다른 방식으로 인류 보건 향상에 크게 이바지한다. 

우뭇가사리의 놀라운 변신 

고체한천배지 위에 보이는 세균 콜로니.

고체한천배지 위에 보이는 세균 콜로니.

독일 출신 의사 겸 세균학자 코흐(Robert Koch·1843~1910)는 프랑스의 파스퇴르(Louis Pasteur·1822~1895)와 함께 근대 미생물학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그가 개발한 ‘퓨어 컬처(pure culture)’ 기술이 아니었다면, 미생물학의 발전은 훨씬 더뎠을 것이다. ‘퓨어 컬처’를 ‘순수 문화’로 번역하기 쉬운데, 미생물학에서는 ‘순수 배양’으로 옮긴다. 이때 영어 단어 ‘culture’는 인공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미생물 무리 또는 미생물을 키우는 과정을 뜻한다. 

1876년 코흐는 탄저균 규명과 함께 특정 미생물이 특정 감염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인류 최초로 입증했다. 이후 코흐는 후속 연구를 위해 세균을 키울 수 있는 마땅한 고체배지를 찾느라 심혈을 쏟고 있었다. 감자를 썰어서 써보기도 하고, ‘젤라틴(gelatin)’에다 세균을 키워보기도 했다. 젤라틴이란, 동물 뼈나 가죽·힘줄 따위에서 얻는 단백질 가운데 하나로 뜨거운 물에서는 풀어지고, 찬물에서는 ‘겔(gel)’ 상태가 된다. 그냥 쉽게, 푹 곤 도가니탕 국물이 식어 흐물흐물한 묵처럼 된 걸 생각하면 된다. 어쨌든 둘 다 마땅치 않았다. 감자는 세균에 필요한 영양분이 제한적이고 젤라틴은 온도가 조금만 올라가면 녹아버려 낭패를 보았다. 

고체배지는 미생물이 자라는 터전이다. 제대로 기능하려면 물리적인 공간과 화학적 영양분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 배지는 배양에 필요한 성분을 물에 녹여 충분히 끓여 멸균한 다음 식혀서 만든다. 관건은 영양분이 고루 섞인 액체배지를 굳혀 고체로 만드는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코흐에게 어느 날 헤세(Walther Hesse·1846~1911)라는 연구원이 자기 아내(Fanny Hesse·1850~1934)의 아이디어를 전달했다. 집에서 과일 젤리를 만들 때 사용하는 우무(한천)를 한번 써보라는 제안이었다. 

우무는 우뭇가사리에서 뽑는 탄수화물인데, 아주 독특한 특성을 보인다. 우무 가루를 물에 넣고 펄펄 끓이면 녹으면서 끈끈하고 투명한 풀처럼 된다. 이걸 섭씨 40도 정도까지 식히면 묵처럼 굳는다. 한번 굳은 우무는 거의 100도에 이르기 전까지는 고체 상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그러므로 우무를 섞어서 고체배지를 만들면 온도에 구애받지 않고 미생물을 배양할 수 있다. 

우무가 고체배지 제작에 안성맞춤인 또 다른 이유는 우무를 분해하는 미생물이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다. 보통 미생물이 천연물질은 모두 먹거리로 잘 이용하는데, 희한하게 우무는 예외다. 여담이지만, 우무가 건강 다이어트 음식 재료로 사랑받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포만감을 주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식이섬유와 미네랄은 풍부하지만, 우리 역시 우무 자체를 소화해 칼로리를 얻지는 못한다. 아무튼, 우무의 이런 특성이 미생물 연구자에게는 큰 행운이다. 미생물이 우무를 먹어치운다면 미생물 배양이 진행될수록 고체배지는 사라져갈 테니 말이다. 

콜로니와 스트리킹 

그림(1) 스트리킹(도말평판법) 출처: 위키미디어

그림(1) 스트리킹(도말평판법) 출처: 위키미디어

배지에 시료 문대는 스트리킹과
멸균된 우무 배지 오염 막는
뚜껑 덮는 접시까지 고안되면서
결핵균·콜레라균 연이어 규명
 

미생물학 연구가 진일보한 건
바다의 선물 우뭇가사리 덕분
 

코흐와 함께 일하던 또 다른 연구원 페트리(Julius Petri·1852~1921)는 헤세 부인의 아이디어 실천에 크게 이바지했다. 뚜껑 덮는 접시를 고안해 멸균된 우무 배지를 담아 잡균 오염의 걱정 없이 원하는 미생물 배양을 가능케 했다. 이 배양 도구를 ‘페트리 접시(petri dish)’라고 부르는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시기에 따라서는 ‘샬레’라는 이름이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보통 순수 배양은 ‘콜로니(colony)’ 확보로 시작한다. 이 단어 역시 ‘식민지’라는 뜻이 아니라, 미생물 세포 하나에서 시작되어 세포분열을 거듭해 모인 미생물 무리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미생물 세포 하나는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지만, 이들 마릿수가 어느 정도 많아지면 군체를 이루어 맨눈에 보이게 된다. 그런데 원하는 미생물의 콜로니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해답은 ‘스트리킹(streaking)’이다. ‘알몸으로 길거리 달리기’라는 뜻이 떠올라 스트리킹이라는 말에 깜짝 놀란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동사 ‘스트리크(streak)’에는 ‘기다란 자국(흔적)을 내다’ 또는 ‘줄무늬를 넣다’라는 뜻도 있다. 

그림(1)에서 보는 것처럼 루프로 시료를 조금 묻혀 고체배지 표면 한쪽에 문대면, 즉 스트리킹하면, 미생물이 고루 퍼지게 된다. 이어서 비어 있는 다른 쪽으로 두 번, 세 번 줄긋기할수록 전달되는 미생물이 점점 줄게 된다. 이렇게 접종한 배지를 배양하면, 미생물이 자라면서 콜로니가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 스트리킹한 부위에서는 미생물이 워낙 많이 접종되어 과밀 성장한 결과로 개별 콜로니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스트리킹이 진행되면서 점점 미생물 수가 줄어 결국 하나씩 떨어진 동그란 콜로니가 나타난다. 

이러한 최첨단 배양 기술에 힘입어 코흐는 결핵균(1882)과 콜레라균(1883)을 연이어 규명하며 세균학의 기초를 닦았다. 코흐가 개발한 순수 배양 기술은 지금도 전 세계 미생물학 실험실에서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변한 게 있다면 유리 접시가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으로 바뀐 정도이다. 이렇게 현대 미생물학 연구를 가능케 한 일등공신은 바다의 선물 우무이다. 

▶김응빈 교수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와 교육을 해오면서 미생물의 이야기 미담(微談) 중에 미담(美談)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생물 변호사’를 자처하며 흥미로운 미생물의 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한국환경생물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SCI 논문 60여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등이 있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출처: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2107082043005&code=610100#csidxabde89afe47d2e1b054b9feecb4e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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