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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49)] 가죽으로, 택배 완충재로, 우주에선 집 짓는 벽돌로…기발하군, 쓸모 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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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0-10 09:36:30

(49) 곰팡이의 놀라운 쓸모

 

 

성묫길 차창 밖으로 보이는 황금 들녘이 늦더위로 체감하지 못하던 가을을 비로소 실감케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 느낌은 자연스레 추억을 소환하여 철부지 시절 알곡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던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쌀 한 톨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자그마치 여든여덟 번의 손길이 필요하다며 ‘쌀 미(米)’ 자를 ‘八十八’로 나누어 알려주던 모습이다. 그 진위는 제쳐두더라도 음식물 쓰레기라는 용어에 갈수록 무감각해지면서 먹거리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 한 사람으로서 가슴에 새겨야 할 가르침임은 틀림없다.

 

2021년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간한 ‘음식물 쓰레기 지수 보고서(FOOD WASTE INDEX REPORT 2021)’에 따르면, 애써 생산한 농·축·수산물 가운데 족히 3분의 1 정도가 온전히 소비되지 못하고 버려진다. 이 가운데 얼추 절반은 유효기간을 넘긴 식료품 폐기를 포함해서 유통과정에서 발생한다. 서양에서는 이렇게 버려지는 식품의 상당량이 빵류라고 한다.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빵은 가축 사료 또는 에탄올과 젖산 같은 발효 제품 생산 원료로 재활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빵 폐기물 활용법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죽 딜레마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옛말도 있듯이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동물의 가죽을 여러 용도로 사용해왔다. 구석기인이 추위를 피하고자 만든 옷과 신발에서부터 오늘날 다양한 제품에 이르기까지 가죽은 생존 수단에서 소위 패션 명품으로 거듭나며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한 사실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문제도 심각하다. 예컨대 미국 비영리단체 ‘텍스타일 익스체인지(Textile Exchange)’는 2020년 한 해에 세계적으로 1250만t의 가죽 제품이 생산되었고, 이 과정에서 약 14억마리의 동물이 희생되었다고 추정했다. 일각에서는 축산업 부산물로 얻는 가죽조차도 가공 과정에서 다량의 온실가스와 화학 폐기물이 발생하므로, 생가죽 사용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처럼 동물권에 환경 문제가 결부되면서 대체품, 곧 인조 가죽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보통 석유 화합물을 기본 원료로 하는 합성 가죽은 천연 가죽과 질감이 비슷하고 내구성도 좋은 데다가 상대적으로 가격도 싸서 실용성과 경제성을 겸비하고 있다. 다만 폴리우레탄과 염화비닐수지로 만드는 탓에 플라스틱과 마찬가지로 자연에서 분해가 잘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최근 ‘비건가죽’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바나나 잎이나 파인애플 껍데기 같은 식물 유래 물질로 만드는 비건가죽은 일단 동물 학대에서 자유롭고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 물질과 탄소 배출량도 적다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식물성 폐기물을 원료로 사용하게 되면 장점은 배가된다. 실제로 몇몇 명품 패션 브랜드와 유명 자동차 회사 등이 비건가죽을 도입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보면 비건가죽 시장 규모는 크게 성장할 전망이지만, 여기에도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있다. 생산 비용이 많이 들어 취약한 가격 경쟁력이 바로 그것이다. 가격 경쟁력을 높이려는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난관을 극복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상황에서 뜻밖의 지원군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곰팡이다.

 


곰팡이 가죽

 

그늘지고 축축하면 벽과 옷, 음식물을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곰팡이, 징글징글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 불청객이 이렇게 기승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든 먹어치우는 먹성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런 능력 덕분에 곰팡이는 세균과 함께 생태계에서 분해자 임무를 수행하여 지구의 물질순환을 가능케 한다. 참고로 곰팡이를 ‘진균(眞菌)’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에는 ‘작은 균’ 곧 ‘세균(細菌)’과 비교하여 ‘진짜 균’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진짜’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곰팡이는 대체 가죽 소재로 당당히 등장해서, 이미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 대표적으로 2018년 미국에서 창업한 마이로(Mylo)는 톱밥에서 키운 곰팡이 ‘균사체’로 가방과 요가 매트를 비롯하여 다양한 제품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균사체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상한 음식에 핀 가는 실타래 같은 것이 바로 균사체이다.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촘촘하게 얽힌 상태로 자라는 ‘균사’ 덩어리다. 균사는 곰팡이를 이루는 세포가 연결되어 실처럼 길어진 것인데, ‘팡이실’이라고도 부른다.

 

끝부분에서 길이 생장하는 균사는 일정한 길이만큼 자라면 가지를 친다. 그 결과, 균사체는 보통 둥그런 모양을 이룬다. 또한 곰팡이는 여러 균사체가 위아래로 얽히며 자란다. 실제로 곰팡이를 실험실에서 배양하면 한 겹으로 자라지 않고 솜뭉치처럼 자란다. 곰팡이는 종류에 따라 균사가 겹치고 두꺼워지면서 위로 자라기도 한다. 곰팡이 가죽 원료의 선두 주자로서 널리 쓰이고 있는 버섯이 그렇다.

 

버섯에 이어 2022년에는 ‘템페(tempeh)’에서 분리한 사상균의 일종인 ‘리조푸스 델레마(Rhizopus delemar)’ 균사체로 가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템페란 콩을 발효한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이고, 사상균은 이름 그대로 균사를 펼치며 실처럼 자란다. 곰팡이 하면 떠오르는 그 모습이다. 스웨덴 과학자가 주도한 유럽 연구진의 실험 개요는 다음과 같다.

 

말린 빵 40㎏을 분쇄하여 물 1000ℓ에 넣고 80도에서 1시간 동안 살균한 다음 리조푸스 델레마를 투여했다. 이 곰팡이는 비교적 배양이 쉽고 성장도 빨라서 이틀 만에 빵가루 1g당 0.15g에 달하는 균사체를 만들어냈다. 왕성하게 자라고 있는 균사체를 모아서 남아 있는 빵가루를 씻어낸 후 무두질했다. 이 과정을 통해서 균사체는 가죽과 같은 재질을 띠게 된다.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균사의 평균 지름이 6.9±0.9㎛(마이크로미터)에서 9.4±1.8㎛로 늘어났다. 이후 글리세롤을 처리하여 신축성을 더함으로써, 버려진 빵 조각을 유용한 인조 가죽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음을 입증했다.

 

2023년 4월, 재료 분야 저명 학술지인 ‘고급 기능성 소재(Advanced Functional Materials)’에 매우 흥미롭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논문이 실렸다. 영국 연구진이 ‘가노더마 루시둠(Ganoderma lucidum)’이라는 버섯으로 ‘자가 복원(self-healing)’ 기능을 지닌 곰팡이 가죽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가노더마 루시둠은 낯선 이름이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영지버섯의 공식 명칭, 곧 ‘학명’이다.

 

연구진은 엿기름으로 키운 버섯 균사체를 원료로 앞서 소개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가죽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가죽에 일부러 구멍을 낸 다음, 엿기름 고체배지 위에 두었더니 놀랍게도 감쪽같이 구멍이 메워졌다. 곰팡이 가죽이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 복원했을까? 그 비밀의 열쇠는 바로 영지버섯 포자이다. 균사체를 가죽으로 만들 때 포자를 적당량 포함시킨 것이다. 이 정도면 곰팡이의 쓸모가 놀랍다 못해 경이롭다. 그런데 어쩌면 이건 시작에 불과한지도 모르겠다.

 

 

(하략)

 

 

출처 및 이하 전문 확인 :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science/science-general/article/202310052033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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