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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세계 - 김응빈의 미생물 ‘수다’(31)] 부족한 유전자 ‘품앗이’하는 세균들…서로 의지하며 번성한다, 인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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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5-13 13:59:36

붉은 여왕과 검은 여왕

부족한 유전자 ‘품앗이’하는 세균들…서로 의지하며 번성한다, 인간처럼

기생하지 않고 독립 생활하는데
필수 영양소 없이 살 수 있을까

북대서양에 서식하는 ‘유비크’
생존 비법은 동료들과의 ‘나눔’
자신의 물질을 넉넉히 만들어

타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준다

 

 

북대서양에 있는 ‘사르가소해’는 육지 대신, 네 개 해류(카나리아 해류, 멕시코 만류, 북적도 해류, 북대서양 해류)로 둘러싸여 있다. 그 결과, 지구에서 유일하게 해안선이 없는 바다가 되었다. 대양 한가운데에 있는 호수 격이라 물결이 잔잔한 데다 버뮤다 삼각지대를 품고 있어 사르가소해는 예로부터 신비롭게 여겨졌다. 여기에는 대형 해조류, 특히 모자반이 풍부하다. 실제로 그 이름도 ‘모자반’을 뜻하는 스페인어 ‘사르가소(sargasso)’에서 유래했다. 이 모자반 초원은 어린 물고기의 보금자리이자 아메리카와 유럽에서 오는 어류의 산란 장소로 해양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사르가소해를 비롯한 먼 바닷물은 보통 맑고 깨끗하다. 물이 맑을수록 그만큼 유기물 함량이 적다. 미생물 입장에서는 먹이가 부족해 생활난을 겪기 십상이다. 하지만 뜻밖으로 이런 환경 조건에서도 잘 살아가는 미생물이 많다. 대표적으로 ‘펠라지박터 유비크(Pelagibacter ubique)’라는 세균이 있다. ‘대양(pelagic)’과 ‘세균(bacteria)’, ‘어디에나 있는(ubiquitous)’을 뜻하는 단어가 합쳐진 이름(학명)에 걸맞게 먼바다를 비롯한 깨끗한 물에서 가장 흔한 미생물이다. 

청빈한 세균 

먹을 것이 부족해서인지 유비크 세균은 지금까지 알려진 독립생활 생물 가운데 가장 작다. 그 크기가 우리 장속에 사는 대장균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세포 반지름이 10배 증가하면, 표면적과 부피는 각각 얼추 100배와 1000배 늘어난다. 세포 하나가 곧 개체인 세균은 세포 표면을 통해 환경과 물질 교환을 한다. 따라서 세포가 커져 부피 대비 표면적이 줄어들면 영양분 흡수와 노폐물 배출이 그만큼 어려워진다. 반대로 크기가 작아지면 상황이 역전된다. 빈(貧)영양 환경에 사는 유비크에게는 작은 체구가 도움이 됨이 분명해 보인다. 

물질만능주의 풍조에 익숙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흔히 재력으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곤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생물은 보유 유전자 수로 그 역량을 가늠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생명체는 비슷하거나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유전자를 복수로 가지고 있다. 

이와는 딴판으로 유비크에는 사는 데 필요한 유전자가 딱 하나씩밖에 없다. 보통 하찮게 여겨지는 세균이 사뭇 청빈한 옛 선비 같은 삶을 사는 모습에 감탄하던 과학자들이 이내 고개를 갸우뚱하고 말았다. 필수 아미노산 합성에 필요한 유전자 가운데 일부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생존에 필수적인 유전자를 잃어버리고도 잘 살아가는 미생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다른 생명체에 붙어 기생생활을 한다. 기생 미생물은 숙주에게서 충분한 양분을 공급받으므로 아미노산 따위를 만드는 유전자가 없어도 별문제가 없다. 

그러나 독립생활을 하는 유비크 경우에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필수 유전자가 없어지면 곧 개체 소멸로 이어질 테니 말이다. 그런데도 유비크는 번성하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품앗이! 유비크는 각자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아미노산을 조금 넉넉히 만들어, 그 일부를 몸(세포) 밖으로 분비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준다. 

베풀지 않고 받기만 하다보면
오히려 존재감 잃고 스스로 도태
기여도 클수록 확고한 ‘생태지위’
미생물 세계에 무임승차는 없어

경쟁 강조한 ‘붉은 여왕설’과 달리
‘검은 여왕설’처럼 협동하며 진화
음식 나눠먹는 포틀럭 파티하듯
어울려 사는 공동체 세상이다

내려놓기 

자연에서 환경 또는 경쟁 상대의 끊임없는 변화에 맞서 계속해서 변하지 못하는 생명체는 결국 도태된다. 이런 엄혹한 생존 수칙을 1973년 미국의 한 진화생물학자가 ‘붉은 여왕 가설’로 함축했다. 그는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가 붉은 여왕과 함께 나무 아래에서 계속 달리는 장면을 보고 이 이름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토끼굴로 빠져들어 이상한 나라를 경험한 앨리스가 이번에는 방에 있는 거울 속으로 들어가 거울 나라 여행길에 오른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좌우가 바뀌듯 거울 나라에서는 모든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반대이다. 주변 환경마저도 고정돼 있지 않고 우리가 향하는 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가만히 서 있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거울 나라를 지배하는 붉은 여왕이 숨 가빠하는 앨리스에게 말한다. “지금처럼 계속 달려야 제자리에 있을 수 있어. 어디론가 가고 싶다면 더 빨리 뛰어야 한다”고. 주변의 부단한 변화에 맞서는 길은 끊임없는 자기 변화밖에 없다는 말이다. 

붉은 여왕 가설은 승리를 다투는 경쟁에 주목하는 현대 진화 이론의 핵심을 쉽고 명쾌하게 전해준다. 그러나 유비크 무리가 보여주는 호혜적 의존성에 대해서는 붉은 여왕이 입술을 꾹 다문 채 묵묵부답이다. 속절없이 답변을 기다리던 중 반대되는 시각으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검은 여왕 가설’이 등장했다. 2012년 발표된 이 가설은 ‘하트(♥)’라는 카드 게임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이 카드 게임은 조커 없이 카드 한 벌(52장)을 가지고 보통 네 명이 한다. 한 사람당 카드 13장을 나누어준 다음, 일정한 규칙에 따라 카드를 내놓으며 주고받는다. 게임이 끝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 중에서 모든 하트와 스페이드(♠) 퀸(Q) 카드만을 골라낸다. 모든 하트 카드는 각각 1점이고 스페이드 퀸은 13점으로 계산한다. 그리고 총점이 낮은 순서로 순위가 결정된다. 스페이드 퀸(검은 여왕)을 가지고 있으면 꼴찌 확정이다. 게임에 이기고 싶다면 검은 여왕을 내려놓아야 한다. 붉은 여왕과는 대조적으로 검은 여왕은 생명체 진화 과정에서 경쟁보다는 협동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과학적 추론 

검은 여왕 가설은 서로 다른 여러 미생물이 어우러진 공동체, 즉 ‘군집’ 연구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 대부분은 자신이 만든 물질을 세포 밖으로 항상 조금씩 분비할 뿐만 아니라, 이를 만드는 유전자도 종종 잃어버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요소가 세균 간 유대 관계를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 나아가 이렇게 맺어진 상호작용이 안정성과 생산성을 확보하여 군집을 번성케 하는 원동력이라고 추정한다. 비유컨대, 여러 미생물이 어울려 살면서 마치 참석자들이 각기 다른 음식을 하나씩 가지고 와서 함께 먹는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를 즐기는 격이다. 

사실 유전자를 적게 가지고 있으면 단세포 미생물이 살아가는 데 분명한 이점이 있다. 번식을 위해 세포 분열을 할 때마다 유전자를 복제해야 하는데, 그 수가 적으면 그만큼 수고(물질과 에너지 소비)를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그렇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주기보다 받기를 좋아하는 세균이 더 번성할 텐데, 그러면 결국 공동체가 붕괴하지 않을까? 

세균은 불로소득이나 무임승차 따위를 추구하지 않는다. 다만 증식 과정에서 우연히 유전자 기능이 상실된 돌연변이체가 생겨날 뿐이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주변 다른 세균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그 덕분에 상대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는 이웃 세균들보다 빨리 자란다. 비록 고의성이 없다고 해도 공동체로서는 심각한 위협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변화무쌍한 자연환경에서 타자 의존이 커지면 그만큼 자기 자신은 취약해진다. 극단적으로 조력자 없이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다. 설령 도움을 계속 받는다고 하더라도,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정도가 낮아지면 존재감이 떨어진다. 이런 구성원의 부재는 공동체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에 반해, 힘들더라도 공동체에 기여도가 높은 구성원일수록 더 확고한 ‘생태지위’를 확보함으로써, 무작위 환경 변화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생태지위란 어떤 생명체가 주어진 환경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고 있는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인간 사회로 치면 직업이 생태지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직업이 없으면 사회생활이 쉽지 않듯 생태지위를 확보하지 못한 생명체 역시 그 환경에서 살기 어렵다. 생태지위가 비슷할수록 경쟁이 심화하고, 심지어 똑같으면 이론상으로는 한곳에 같이 살 수 없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누군가 생태지위를 조금만 변화시키면 큰 갈등 없이 공존할 수 있다는 추론에 도달한다. 이런 맥락에서 서로 다른 유전자 손실에 따른 상호 의존은 과도한 경쟁을 피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생물학적으로 생명 현상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단어로 함축할 수 있고, 그 바탕에는 유전자가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 생물은 암수가 있고, 유성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전달하며 세대를 이어간다.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곧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기에 이를 ‘수직 유전자 전달’이라고 부른다. 단세포 생물이면서 무성생식을 하는 세균에게는 세포 분열 자체가 번식이고 수직 유전자 전달이다. 

유성생식과 무성생식은 각각 장단점이 있다. 짝짓기를 통해 유성생식에 성공하려면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반면 혼자서 분열만 하면 되는 무성생식은 훨씬 더 쉽고 간편하다. 세균 한 마리가 분열하여 둘이 되고, 다시 분열할 때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 그런데 거듭제곱으로 엄청나게 늘어나는 세균 수와는 달리 유전적 다양성은 거의 그대로이다. 이대로라면 환경 변화 적응에 매우 취약해진다. 하지만 세균에게는 그들만의 은밀한 비법이 있다. 다른 세균들과 유전자를 주고받는 ‘수평 유전자 전달’이다. 이 덕분에 상호 의존 세균이 모여 이루는 군집에서 공동체 기여도는 수시로 바뀐다. 그들의 전매특허인 수평 유전자 전달을 통해 세균은 유전적 다양성을 획득하여 변신을 거듭할 수 있으니 말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생명체 화석은 36억년 전쯤 존재했던 세균의 것이다. 최초 생명체가 정확하게 언제 탄생했는지 모르지만,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이 적어도 38억년 동안 생명체 진화를 주도해 왔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가장 단순하지만, 시원적 삶의 형태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미생물에 삶의 순리가 담겨 있지는 않을까. 

 

 

▶김응빈 교수


부족한 유전자 ‘품앗이’하는 세균들…서로 의지하며 번성한다, 인간처럼

1998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미생물을 연구하며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연세대 입학처장과 생명시스템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지은 책으로 <술, 질병, 전쟁: 미생물이 만든 역사> <온통 미생물 세상입니다> <생명과학, 바이오테크로 날개 달다> <미생물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운다> <나는 미생물과 산다> <미생물이 플라톤을 만났을 때>(공저) 등이 있다. 또한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 파트너 채널 ‘김응빈의 생물 수다’를 연재 중이다. ‘수다’는 말이 많음과 수가 많음, 비잔틴 백과사전(Suda) 세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네이버 채널 링크: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otalkkim/knowledge 

 

 

 

출처 : 경향신문 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0512202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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